카스트로의 쿠바와 모택동의 중국... Le monde

키신저의 경고...

<쿠바의 체 게바라와 중국의 모택동>
- 모택동은 게릴라 투사로서의 체게바라를 존중했고, 체 게바라는 남미의 마오라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모택동과 피델 카스트로의 관계는 좋지 못했다. 소련을 바라보는 두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입장 차이 때문이었다.


2016년 11월 27일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의 사망과 관련해서,

미국 CNN방송은 카스트로의 쿠바와 모택동의 중국이 견원지간이었음을 회고하는 보도를 했다.


쿠바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가 사망하자, 중국의 시진핑은 그를 "우리 시대의 위대한 인간"이라고 기억했다.

하지만 수십년 전, 카스트로는 중국 공산주의의 아버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나는 마오가 수많은 세월 동안 그의 머리로 만든 것을 발로 파괴해 버렸다고 믿는다. 나는 그것을 확신한다. 세월이 흐르면, 중국인민과 중국 공산당이 이 점을 인정할 것이다."라고 카스트로가 1977년 5월에 미국 언론인 바바라 월터스에게 말했다.

카스트로는 마오의 과오로, 개인 숭배와 권력 남용을 지적했다. "나도 권력을 가졌지만, 결코 남용하지 않았고, 머리 속으로는 그것을 가지려 하지도 않았다."다고 말했다.

중국과 쿠바 : 냉전의 반대편에 있는 공산주의자들.

냉전 동안 쿠바와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들이었지만, 카스트로는 월터스에게 그는 중국을 미국의 좋은 동맹으로 간주하며. 따라서 쿠바의 "혹독한" 적이라 주장했다. 

냉전이 한창일 때, 쿠바와 중국은 반대 편에 있었다. 쿠바가 소련과 굳건한 동맹이었다면, 중국은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해석의 차이 때문에, 소련과 갈등했다. 중국은 미국과 관계를 회복했고, 경제 개혁에 착수했다.

중국 에너지 안보 연구소 소장, 빅터 가오는 "중국의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이 소련 붕괴에서 큰 역할을 했다."라고 평가했다. "피델 카스트로는 중국이 소련과 갈등하는 것과 미국과 점점 친하게 된 것에서 불편함을 느꼈고, 이는 매우 이해할만한 것이다. 그는 가장 최근 까지도, 미국과 친하게 지내는 것에 매우 반대했다. 카스트로는 중국이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배신했다고 생각했다."

아바나와 베이징은 1960년에 외교관계를 수립했지만, 냉전에 반대편에 있었기 때문에 거의 20년 동안 관계가 소원했다. 

양국 관계는 1989년 소련이 붕괴할 때까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1995년 카스트로가 중국을 공식 방문한 후에야 비로서 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소련이 붕괴하자, 미국의 경제 봉쇄하에 있었던 쿠바는 다른 공산주의 동맹 세력과의 관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중국이 빠르게 쿠바의 주요 교역국이 되었다. 

가오 소장은 "돌이켜 보면,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경제 발전은 매우 잘못된 것이었다. 1978년 이래, 중국은 철저한 경제 개혁에 나섰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하지만 쿠바는 그 시절 동안 심오하게 변화하는데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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