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년,모스크바와 하노이를 이간질 하는 모택동... Le monde

키신저의 경고...


<호지명을 환영하는 중국 화동들- 그의 좌와우는 모택동과 주은래>

북베트남에 대해 관대한 모택동...

1962-1964년, 모택동이 북베트남의 호치민 세력에 대한 지원에 열을 올릴 동안, 소련의 흐루쇼프는 베트남 지원에 대해 무관심 했다. 베트남 사태에 대해 소련은 무심한 방관자였다. 특히 62년 10월의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더욱 그랬다.

이런 가운데, 북베트남은 중소갈등에서 중국 편을 들 수 밖에 없었다.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소련과 베트남의 적화통일을 노리는 북베트남이 갈등하는 가운데, 1963년에 소련은 북베트남에게 채무를 갚으라고 요구했다. 

이는 모택동에게 모스크바와 하노이를 이간질 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1963년 6월 4일 우한을 방문한 북베트남 대표단에게 모택동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그들(소련)이 당신들에게 빚을 갚으라고 요구했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빚을 덜 빌리라고 충고합니다... 당신들이 그 나라들로부터 빚을 빌릴때, 그들은 나중에 빚을 갚으라고 압박할 것이고, 당신들은 그것이 다루기 힘든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중국에서 빌릴 때는 걱정 마셔도 됩니다. 당신들은 중국 빚을 준비가 되었을 때 갚으면 되며, 심지어 갚지 않아도 좋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이 그 나라에서 돈을 빌릴 때는, 당신들은 반드시 갚아야 할 겁니다."

이는 전통 중화제국의 조공관계의 관점을 반영한 것이었다. 마오의 중국은 물질적 이익 보다는 문화적 우월에 더 관심이 있었다.

참고-

Qiang Zhai, China and the Vietnam Wars, 1950-1975 (Chapel Hill-NC: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2000), 124.


중국의 무상원조 정책은 60년의 쿠바에 대한 차관에서도 확인되었다.

1960년 11월 17일

체 게바라, 중국 방문

모택동은 그에게 차관으로 6000만 달러를 주었고, 주은래는 게바라에게 "상환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장융, 존 핼리데이, 마오 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까치, 2006,p.609.
 



덧글

  • 전위대 2017/09/02 11:20 # 답글

    소련은 남북베트남의 유엔 동시 가입까지 찬성할 정도로 베트남 문제에 있어서 소극적이었죠.

    여튼 디쾨터는 저런 모택동의 '대인배'적인 외국 무상 문물을 비웃죠. 수천만명의 목숨과 맞바꾼 허세라고.
  • 파리13구 2017/09/03 08:26 #

    마오는 그 허세가 중국이 나가야 할 정체성이라 생각했습니다.

    비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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