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체게바라와 쿠바 설탕왕의 대화... Le monde


훌리오 로보 Julio Lobo 는 쿠바에서 제일가는 설탕 사업가였다. 

1959년 쿠바 혁명 당시, 로보의 재산은 2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그는 14개의 설탕 공장, 3만 에이커의 토지, 은행, 보험회사 그리고 아바나,뉴욕,런던,마드리드 그리고 마닐라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었다. 

로보는 베네주엘라계 유대인 출신이었다.

1960년 11월, 체게바라가 로보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렀다. 당시 혁명에도 불구하고, 자본가 로보는 쿠바를 떠나지도 않았고, 카스트로를 비판하는 데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당시 피델 카스트로는 로보의 설탕 공장을 수 일 안에 압류할 예정이었고, 체게바라는 그에게 쿠바에 남을 것을 설득하려 했다.

쿠바 잔류를 위해, 체가 제안한 것은 2000 달러의 월급과 그의 궁궐 같은 집 한 채를 보유할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2억 달러의 자산가 로보에게 잔류를 위해 2000달러의 월급을 제안한 것은 어리석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혁명 쿠바에서 월급 2000 달러가 낮은 것이 아니었다. 체게바라는 국립은행 총재 자격으로 받는 1000 달러의 월급을 거부하고, 사령관 자격으로 받는 250 달러의 월급만을 수령했다. 

체는 로보에게 이제 결단의 시간이 왔다고 알렸다. 이번 혁명은 공산주의 혁명이며, 자본가로서 로보는 현재의 모습 그대로 남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에게 남은 선택지란 남아야 한다면, 혁명의 일부가 될 수 밖에 없고, 아니면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로보는 소련의 흐루쇼프가 세계의 경쟁하는 정치,경제 체제들 간의 "평화공존"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한 체게바라의 답변은 평화공존은 국가들 간에 가능한 것이지, 한 나라 안에서는 가능하지 않다고 일축해 버렸다.

체는 그에게 다음 제안을 했다. 로보에게 쿠바 설탕 산업의 행정가가 되어 달라는 지시였다. 그는 자신의 재산을 잃을 것이지만, 그의 설탕 공장 한 곳에서 나오는 수입을 유지하는 것이 허락될 것이었다. 

제안에 대해서,로보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로보는 집으로 돌아갔고, 이틀 후에, 로보는 미국 마이에미로 망명했다. 그 다음 날, 혁명 정부는 로보의 전 재산을 국유화했다. 


Jon Lee Anderson, Che Guevara: A Revolutionary Life, Grove Press,2010...



덧글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7/11/18 01:58 # 답글

    또 다른 쿠바 난민. 훌리오 로보는 자산가로서 잘 한 결정을 내렸으나. 쿠바와 미국. 미국의 마약과의 전쟁과 마약 비지니스의 기점이 쿠바 혁명이니... CIA 관계자와 역사학자들이 악마와의 거래를 했다고 한 걸 보면(마피아들을 활용함) 미국의 중남미-동남아 마약 스토리는, 말과 감정을 나타낼수 없네요.

    그리고 체 게바라가 준 선택지들은 억 대 자산가한테 한마디로 이거나 먹고 떨어져 급이니...

    미국은 쿠바 미사일 위기, 베트남 전쟁과 에어 아메리카, 콘트라 스캔들, 파블로 에스코바르-로드리게즈 형제, 엘 차포, 골든 트라이앵글 등. 공산주의와 좌익 정권에 맞서던 미국은 새로운 적들과 병들을 만들어 버렸단 생각만 듭니다. 그나마 다니엘 엘스버그, 게리 웹 같은 폭로자들이 있기에 희망이란게 있다고나 할까요?

    콜럼비아, 멕시코든 마약과의 전쟁과 관련한 좋은 책들이 있나요? 논문-미디어는 제법 있던데...
  • 파리13구 2017/11/18 03:06 #

    제가 남미쪽은 잘 모릅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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