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의 경고...


1968년 8월, 바르샤바 조약 4개국(소련, 불가리아, 폴란드, 헝가리)의 동구권 군대가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한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는 소련에게 동과 서에서의 국경 변방에서의 안보불안을 의미했을 것이다.
중소 분쟁 때문에, 이미 60년대초부터 샤를 드골 같은 선각자들은 소련이 중국과 국경문제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고, 이것이 소련으로 하여금 서양에 대해 유화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게 만든다고 정확하게 읽어냈다.
소련의 동쪽 변방이 중국 때문에 불안한 상황에서, 50년대 말의 폴란드,헝가리 사태와 더불어, 68년의 프라하의 봄 사태는 소련의 동유럽 지배 조차도 불안함을 소련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동쪽과 서쪽에서 불안을 가진 소련이 60년대말에 미국 및 서유럽과 데탕트를 추진하기 위한 좋은 국제환경이 조성되어 있던 것이었다. 소련에게 데탕트란 동과 서에의 양난을 서양과의 평화공존으로 돌파해 보자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키신저의 데탕트 구상은 미국이 소련의 동유럽 지배를 사실상 인정하는 대신에, 소련이 미국의 베트남 전쟁을 끝내는데 도움을 준다는 미소의 상호이익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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