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베트콩의 결성과 소련의 인식? Le monde

키신저의 경고...



소련- 미국과의 데탕트인가,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의 수호자가 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南越南民族解放戰線), 즉 베트콩은 1960년 12월에 결성되었다. 베트콩은 남베트남에서 미국과 그 동조세력인 사이공 정부에 대응하기 위한 무장 투쟁 조직이었다. 

베트콩의 결성에 대한 소련의 인식은 어떤 것이었을까? 남베트남 해방을 위한 베트콩의 무장 투쟁에 대해서, 사회주의 형님국가이자 전세계 민족해방 운동의 후원자인 모스크바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토마스 크리스텐슨에 따르면 다음과 같았다. 

중국과 소련의 긴장과 흐루쇼프 평화공존 노선에 대한 모택동 중국의 반기가 극적인 영향을 준 곳이 바로 동남아시아였다.

베이징과 긴밀하게 상의하고, 모스크바에는 알리지 않은 채, 1959년 5월 하노이는 남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이 민족 통일에 나설 수 있도록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돕기로 결정했다. 남베트남 민족해방 전선이 결성되었다. 

베트콩의 결성에 대해서 하노이가 비밀을 유지하는 가운데, 베이징에는 알리고, 모스크바에는 속임수를 보인 것은 남베트남 혁명에 대해서 베이징 보다는 모스크바가 더 보수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소련이 남쪽에 대한 하노이의 계획을 알아챘을 때, 베트남 동지들의 위협적 행동에 대해서 모스크바는 놀랐고, 당황했다. 

가이덕에 따르면, "강대국으로서 소련은 이데올로기적 선호 뿐만 아니라 지정학적 이익을 고려해야만 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민족해방 운동에 나선 베트남 공산주의자를 돕기도 해야 했지만, 인도차이나에서의 미국과 소련의 데탕트도 동시에 고려해야 했다는 것이다. 

흐루쇼프의 기본 입장은 전자 때문에 후자의 이익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특히 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에는 소련의 데탕트 동기가 더욱 강화되었다. 


참고- 

Thomas J. Christensen, Worse Than a Monolith: Alliance Politics and Problems of Coercive Diplomacy in Asia , Princeton University Press (April 3, 2011), 159-160.



덧글

  • 역성혁명 2017/08/24 16:56 # 답글

    베이징이 해방의 도우미 역활을 벗었을때까지는 그리 오랜시간이 안걸렸죠?
  • 까마귀옹 2017/08/24 17:02 #

    정작 하노이도 베이징이 도우미 역할을 계속 해줄 것이라곤 처음부터 기대 안했죠.
  • 까마귀옹 2017/08/24 17:04 # 답글

    하지만 정작 베트남 전쟁이 제대로 터진 뒤엔 베트남은 중국보다 소련을 더 신뢰하였죠. 당연히 이유야 그 '역사'가 작용하였고.
  • 파리13구 2017/08/24 20:58 #

    베트남 전쟁에 대한 지원에 대한 보답은 마오는 베트남이 중소분쟁에서 중국을 지지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중국은 베트남에 대한 소련의 지원을 방해했고, 베트남이 미국과 평화협상하는 것도 반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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