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과 영국 공산당의 대화, 폭력 혁명? Le monde

키신저의 경고...


1954년은 모택동 외교정책에서 화전양면 전술을 확인할 수 있는 해였다.

모택동의 중국은 54년의 한국과 인도차이나 분쟁 해결을 위한 제네바 회담에서 평화공존을 주장했고, 전쟁 지속을 주장하는 북베트남을 압박, 분단을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베트남 뿐만 아니라, 동남아에서 중국은 평화공세를 벌였다. 버마,태국,말레이시자 공산당에 대해서, 중국은 공산세력에 대한 지원 중단을 약속했고, 상호간의 체제 보장에 합의했다. 즉 중국은 동남아에 혁명을 수출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폭력 혁명 노선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은 다음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1954년 제네바 협정을 즈음하여, 영국 공산당 서기장 해리 폴릿 harry pollitt 이 중국 공산당에 서한을 보냈다. 당 차원의 모택동 선집 2권의 번역과 관련하여, 영국 공산당은 다음 문장의 삭제를 요구했다. “혁명의 중심적 과업과 최고 형식은 무장 투쟁으로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며,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폴릿은 이 문장이 자신의 당에 심각한 문제를 안길 수 있으며, 영국 공산당이 1951년에 채택한 당 강령에도 모순된다고 주장했다.영국 공산당은 러시아 볼셰비키가 혁명을 위해 사용한 폭력의 사용은 더 이상 영국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결의했었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중국 공산당 선전부는 영국 공산당의 입장에 동의한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모택동이 후에 이 사실을 알게 되자, 그는 공산당 선전부를 질책했다. 마오는 이후 외국 공산당 지도자들과의 대화에서, 이 사건을 자주 인용했다. 마오는 무장 투쟁을 통한 권력 장악은 중국 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적용되며, 과거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올바른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1)

평화공세 속에서도, 8월 11일에 주은래가 “대만은 해방되어야 한다”고 선언했고, 9월 3일 “제1차 타이완 해협 위기”를 도발한 것은 중국의 혁명성의 과시하는 것이자, 54년 중국 외교정책의 화전양면 전술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1) Yang Kuisong, Changes in Mao Zedong's Attitude toward the Indochina War, 1949– 1973, Cold War International History Project Working Paper 34,2002.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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