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혁명과 소련 그리고 베트남" Le monde

키신저의 경고...



키신저는 모택동의 중국혁명 성공 이후, 소련-중국-베트남 3각외교 관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지금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내전에서 막 승리한 중국 공산당은 그들의 자존적 독립에 소련이 가장 심각한 위협이 될 것으로 이미 생각하고 있었고, 또한 역사적으 로 베트남도 중국에 대해 똑같은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따라서 1950년대 인도차이나에서 공산주의가 성공했다면, 상기의 라이벌들 간의 경쟁이 더욱 가속화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것도 서양에게는 위협이 되었겠지만, 세계적 음모로 중심에서 기획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1)


1954년의 제네바 회담에서, 특히 5월 7일 디엔베엔푸에서 베트남이 승리한 이후,북베트남의 입장이 강경해졌다. 베트남의 강경한 입장을 잠재우고, 타협을 통한 협상 타결을 압박한 것이 바로 모택동과 주은래였다. 중국은 전쟁의 지속을 통한 무력 통일 보다는 북위 17도 선을 기준으로 한 분단을 수용하라고 북측을 압박했다.

당시의 중월관계의 불신을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다. 

1954년 7월 22일 제네바 회의 참가자들을 위한 만찬이 열렸는데, 만찬 도중 중국 대표였던 주은래 수상은 회의에 참석한 베트남 남쪽의 총수 고 딘 디엠(Ngo Dihn Diem)의 동생에게 북경에 사이공 측의 공사관을 여는 것이 어떠나는 놀란 만한 제안을 한다. 협정이 체결 된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중국이 벌써 특유의 양다리 외교를 시작한 것이다. 사이공 측의 거부로 제안이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월맹은 대단히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베트남을 영구 분단시키려는 중국의 의도에 대한 논쟁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증거가 나왔기 때문이다.

1) Kissinger, Diplomacy ( New York: Simon & Schuster, 1994), 627.

2) 김기수, 중국 도대체 왜 이러나,살림,2010 




덧글

  • 까마귀옹 2017/08/21 17:17 # 답글

    이렇게 보면 북베트남과 미국이 오히려 '그래도 전통과 역사(?)의 적보다는 2차 대전 때 같이 협력한 쪽이 낫겠다'라며 우호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텐데, 미국 특유의 바보짓-외국 역사와 지리에 무지한-이 하필 여기서 빛을 발하고 말았죠.
  • 파리13구 2017/08/21 17:23 #

    반공 음모론의 영향도 받았습니다. 도미노 이론...ㅠ
  • 까마귀옹 2017/08/21 17:26 #

    그것도 '바보짓'이죠. 음모론에 혹했다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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