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혁명과 중국 외교"

키신저의 경고...


혁명 중국에 남아있는 자본주의,봉건주의,관료주의 타도를 목표로 했던 문화 대혁명이 극성을 부린 것은 1966년에서 1969년까지 였다.

문화대혁명 동안, 중국과 소련 관계가 최악이 되었고, 북베트남과 중국의 관계도 악화되었다. 

엘리트들이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중국의 외교 관료들도 주요 희생자들이 되었다.

키신저는 당시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중국의 외교적 입장은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 소비에트 블록과 서구 열강, 그리고 자기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무차별적으로 분노하는 중국, 세계인의 눈앞에 펼쳐진 그 중국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해외에 있던 중국 외교관과 지원 부서의 직원들은 혁명의 촉구와 ‘마오쩌둥 사상’에 대한 열변으로 주재국 시민들에게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흥위병 무리들이 베이징 내의 대사관을 공격하고,특히 영국 대사관을 약탈하여 달아나는 직원들을 폭행했던 일은, 다분히 70년 전에 있었던 의화단 사건을 상기시키는 장면이었다. 영국의 외무 장관이 중국 외무 장관 천이 장군에게 서한을 보내 영국과 중국이 “외교 관계는 그대로 유지하되 당분간 양국의 수도에서 외교 사절과 직원들을 철수하자는” 제안을 했으나, 아무런 반응도 얻지 못했다. 천이 외무 장관 자신이 ‘투쟁’의 대상이 되어 있어서 회신할 형편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은 능력 출중하고 이념적으로도 흠집 하나 없는 황화 주 이집트 대사만을 제외하고는,  모든 해외 공관 대사들이 대사관 직원의 3분의 2와 더불어 전부 귀국 조치를 당하여,농촌에서 재교육을 받거나 이런저런 혁명 활동에 참여해야 했다. 이 시기의 중국은 10여 개 국가 정부와 뜨거운 논쟁에 휘말렸다. 순수하게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것은 오로지 알바니아 인민공화국뿐이었다. 1) 


문혁 동안의 국제사회에서의 중국의 '절대고독'을 타파하기 위해 모택동과 주은래가 꺼낸 카드가 바로 미국과의 화해였다고 볼 수 있다.

미중화해는 혁명 중국이 탄생 이래 불구대천지 원수였던 미국 제국주의와 손을 잡겠다는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만약 문혁이 없었다면, 관료적 틀에서 사고하는 중국의 외교 관료주의가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모택동의 미국과의 화해 노력은 큰 국내적 반발을 유발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문혁이 중국의 외교 관료주의를 상당히 약화시킨 까닭에, 모택동은 비교적 큰 저항없이 미중화해라는 큰 일을 해 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외교에서의 관료주의에 대한 반감은 모택동과 키신저가 공유하는 것이었다.

닉슨과 키신저가 국무부를 따돌리고, 주요 외교정책 결정을 백악관에서 주도하고자 한 것은

미국판 '문화대혁명'이었다고 해석 가능하다. 

1) 헨리 키신저, 『 (헨리 키신저의)중국 이야기 』, 민음사,2012,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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