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 스탈린이 북한의 남침을 승인한 이유는? Le monde

키신저의 경고...



션즈화는 한국전쟁에서의 스탈린의 목표는 부동항의 확보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목표에 의거하면, 북한의 적화통일도, 반대로 미군개입에 의한 북한의 멸망도 스탈린의 목표에 반하는 일은 없다는 계산이었다는 것이다. 두 경우 모두에서, 스탈린은 한국전쟁에서의 자신의 전략목표, 즉 부동항 확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1) 
1950년 1월 중소조약 협상 과정에서, 요동반도의 여순,대련에 대한 소련의 기득권이 쟁점이 되었다. 

1월 26일은 중국은‘창춘 철도와 뤼순항 및 다롄항에 관한 협정’을 소련 측에 전달하고, 2년 내 동북의 모든 주권을 회수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1월 30일, 소련, 중국 측 초안을 수정하여 전달하면서, 기본적으로 중국의 요구를 수용했다. 즉 소련이 여순,대련을 포기할 의사가 있음을 표시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순,대련을 포기할 의사가 있음을 소련이 전달한 이후, 3일 후에 스탈린은 다음 결정을 내렸다. 1950년 1월 30일이었다.

1월 30일
스탈린, 스티코프 북한주재 소련대사에게 전문

스탈린, “김일성을 만나 의논하고 도울 준비가 되었다”며 김일성의 남침 제의를 원칙적으로 수용하는 청신호를 보냈다. 

전문은 다음과 같았다 :

“나는 김일성의 불만을 이해한다. 신중하게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가 이 건으로 나와 이야기하고 싶다면 나는 언제라도 만날 용의가 있다. 이상의 메시지를 그에게 전달하고 내가 그를 도울 용의가 있음을 전해 주기 바란다. 이 사실이 모택동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하라.”


부동항 확보에 대해 키신저도 스탈린의 정책결정의 중요한 동기였다고 인정했다. 2) 

스탈린이 변심하게 된 또 다른 요소는 앞서 설명했던 중 • 소 우호 조약 체결에 이르는 협상 과정에서 생긴 마오쩌둥에 대한 실망감이었을지도 모른다. 중국 내에서 러시아의 특권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마오쩌둥은 만천하에 뚜렷이 밝히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결빙하지 않는 다렌 항구에 대한 러시아의 통제는 임시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서 스탈린은 한반도가 공산주의 하에 통일된다면 소련 해군이 필요로 하는 것을 좀 더 쉽게 제공할 것이라고 결론지었을 수 있다. 언제나 노골적이지 못하고 복잡한 스탈린은 김일성에게 이 주제를 마오쩌둥과 이야기해 보라고 재촉하면서,자신은 “동양에 관해서는 잘 이해하고 있노라”고 토를 달았다. 그러나 사실은 되도록 많은 책임을 중국 쪽에 넘기려는 것이었다. 그는 김일성에게 모스크바는 “유럽 쪽 상황”에 관심이 많고 우려되는 바가 많다고 설명하면서,“소련에게는 대단한 도움이나 지원”을 바라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그에게 경고도 잊지 않았다. “만약 당신이 얼굴을 한 대 쥐어박히더라도,나는 손도 까딱하지 않을 거요. 그러니 도움이 필요하면 마오쩌둥에게 청해야 합니다.” 거만하고,장기적이고, 교활하고, 신중하며, 무감각하지만, 땀 흘려야 하는 위험은 중국에 떠넘기면서 소련을 위한 지정학적 혜택을 이끌어 내는 그 태도는 철두철미 스탈린다웠다. 

1) 션즈화, 극동에서 소련의 전략적 이익보장 : 한국전쟁의 기원과 스탈린의 정책결정 동기,한국과국제정치(KWP). Vol. 30 No. 2 (2014)

2) 헨리 키신저, 『 (헨리 키신저의)중국 이야기 』, 민음사,2012,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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