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에 대한 모택동의 야심... Le monde

키신저의 경고...

일반적으로 어려움에 빠진 이웃을 돕는 것은 선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하지만, 모택동의 원조는 다른 해석을 요구했다.
냉전의 세계는 3지역으로 구분되었다. 미국과 서유럽을 주축으로 반공블록을 제1세계, 소련과 공산권의 공산블록을 제2세계, 양쪽 어디에도 참가하지 않은 지역을 제3세계가 바로 그것이었다. 
냉전의 역사에서, 중소 분열 및 경쟁의 무대는 주로 제3세계였지만, 제2세계, 특히 동유럽에 대한 모택동의 야심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 야심은 퍼주기였다. 혁명과 전쟁으로 중국의 국내경제가 피폐한 상황에서 모택동은 중국을 사회주의 세계의 우두머리로 만들기 위해 동유럽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모택동의 야심을 위해 희생된 것은 중국의 농민들이었다.

장융에 따르면 다음과 같았다. 

중국 농민들은 소련과 동유럽에서 수입하는 군사장비의 대금을 지불하기 위해서 식량을 생산해야 할 뿐만 아니라 마오쩌둥이 국제정치 무대에서 세를 과시하려고 뿌리는 막대한 식량 기증을 위해서도 귀중한 농산물을 내놓아야만 했다. 중국은 북한이나 북베트남과 같은 가난한 나라들뿐만 아니라 이런 나라 보다 훨씬 더 잘사는 유럽 공산국가들에도 마구 식량 원조를 제공했는데,이런 현상은 마오쩌둥이 스탈린 사후에 자신이 세계 공산진영의 우두머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이후 특히 심해졌다. 

루마니아가 청소년 잼버리를 개최했을 때 마오쩌둥은 3,000톤의 식물성 식용유를 기증했는데,이 식용유를 생산한 중국의 농민들은 조리 및 조명용(당시 대부분의 농촌 지역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으로 1년에 1킬로그램의 식용유를 배급받았다. 

중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유한 헝가리에서 1956년에 민중봉기가 일어난 후 베이징은 헝가리 정부에 3,000만 루블 상당의 상품과 350만 파운드의 “차관”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런 차관들은 마오쩌둥이 항상 말했던 것처럼 상환할 필요가 없었다.

동유럽 최초의 대규모 봉기가 스탈린의 사망 직후인 1953년 6월에 동독에서 발생하자,마오쩌둥은 기꺼이 동독의 독재정권 지원에 나서 즉각적으로 5,000 만 루블 상당의 식량을 제공했다. 그러나 동독은 중국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기계류와 교환하는 조건으로 더 많은 식량을 요청했다. 베이징의 대외무역 관리들은 사실상 동독의 이러한 교환 조건을 거부하기로 결정했으나 마오쩌둥이 끼어들어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살기 힘들다. 우리는 그들을 돕는 것을 우리의 일로 여겨야 한다” 〔고딕체는 마오쩌둥에 의한 것임〕는 우스꽝스러운 주장을 내세우면서 관리들에게 수락하도록 지시했다. 동독은 중국의 식량 원조 덕분에 1958년 5월에는 식량 배급제를 폐지할 수 있었다. 


장융, 존 핼리데이, 마오 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까치, 2006, 500-501.




덧글

  • The buzzard 2017/07/26 22:26 # 답글

    이미 중소 결렬 전부터도 공산권 내부의 패권국이 되려는 중공의 야욕이 저렇게까지 적극적이었는지는 또 몰랐네요. 언제나 흥미로운 포스팅 감사합니다
  • 파리13구 2017/07/27 01:17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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