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북베트남과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갈등? Le monde

키신저의 경고...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형제국가 소련,중국,베트남 사이의 갈등이 존재했을 뿐만 아니라, 베트남 좌익세력 안에도,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간의 입장차이가 존재했다고 한다. 

1965년 베트남 전쟁이 고조되면서, 제3국이 주도했던 평화를 위한 노력이 있었다. 가령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폴란드 외교관 미칼로프스키 Michalowski의 중재 활동이었다. 

미칼로프스키는 미국의 애브릴 해리먼이 작성한 14개조의 협상안을 가지고 분쟁 당사자들을 두루 방문했다. 모스크바,베이징 그리고 하노이를 방문했다. 그의 협상안은 소련 외무장관 그로미코의 지지를 받았지만, 중국은 평화협상 자체에 반대를 했다. 

미칼로프스키의 중재 노력에 대해서, 북베트남 당국은 고마움을 표시했지만, 하노이는 베이징이 협상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베트남 주권에 대한 침해라고 비판했다. 1965년 말 하노이는 평화협상 방안 자체에 대해서는 동의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것은 평화협상안에 대해 하노이와 베이징이 의견을 달리했다는 것 뿐만 아니라,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NLFSV 간의 갈등이었다.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좌파조직이 평화협상에 대한 의견이 달랐다는 것이다, 

북베트남이 더 합리적이고, 협상에 개방적이었다. 반면, 남쪽의 민족해방전선은 남부에서의 전쟁에만 매몰되었고, 더 큰 그림에는 무관심했다. 베트남 전쟁이 제3차세계대전으로 비화되는 것은 해방전선측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미칼로프스키에 따르면, 북베트남이 더욱 합리적이고, 소련과 입장이 유사하다면,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은 중국의 입장에 가까웠다. 

해방전선은 남쪽에서의 연립정부 구성안이 자신의 영향력에 파괴적일 것이라 우려했다. 북베트남은 북쪽에 대한 폭격 중단 같은 사안을 위해서 해방전선을 팔아넘겼다는 비난을 듣지 않기위해서 조심했다.



덧글

  • The buzzard 2017/07/22 21:58 # 답글

    전쟁이 끝난지 몆년 지나지 않아 북에서 베트콩을 시급하게 해체시키고, 그 전부터도 북측 파견 인사들로 체어 넣은것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 파리13구 2017/07/22 22:37 #

    중국의 끄나풀 취급 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