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베트남전쟁과 소련과 유럽의 데탕트 Le monde

키신저의 경고...


냉전의 역사에서 데탕트를 먼저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유럽이었고, 샤를 드골이 그 주역이었다.드골은 프랑스의 영광이라는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소련과의 데탕트를 추진했다. 

미국이 케네디와 존슨 정부 하에서 베트남 전쟁이라는 수렁에 빠지는 동안, 프랑스,서독 그리고 영국 등 유럽의 핵심 동맹국들은 미국의 동남아 전쟁의 위험을 거듭 제기했고, 미국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베트남 전쟁 동안 미국의 전쟁 개입 심화를 둘러싼 갈등이라는 상황에서, 서유럽과 소련의 데탕트 분위기는 나토 동맹의 존립을 뒤흔들 수도 있었다.

실제로 소련의 관점에서 유럽에서의 데탕트는 무엇이었을까? 소련은 미국과의 냉전은 계속하면서, 서유럽과만 데탕트 관계를 유지하면서, 미국과 서유럽 동맹을 분열시키는 쐐기 전략을 시도했다고 한다. 특히 1966년-1970년까지 이런 시도를 했다.  

1960년대의 국제정치에서 베트남은 동맹정치의 합종연횡의 자극제가 되었다. 

미국의 베트남 전쟁 확대 개입을 두고 유럽과 미국이 분열했다면, 소련은 서유럽과만 데탕트를 추진하여, 서유럽과 미국 동맹을 이간질하려 했다. 북베트남은 중국과 소련의 갈등이라는 상황에서, 두 개의 공산주의 강대국이 베트남 지원을 두고 혁명성 경쟁에 나서도록 만다는 외교를 구사했다. 그리고 미국은 특히 닉슨 시대에, 북베트남의 최대 지원세력인 소련,중국과의 데탕트를 추진, 북베트남을 심리적으로 고립시켜, 평화협상에 전향적으로 임하게 만들려고 시도했다. 


참고-

Raymond Garthoff, Detente and Confrontation: American-Soviet Relations from Nixon to Reagan,  Brookings Institution Press,198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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