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아이젠하워, 중소 동맹의 충격... Le monde

키신저의 경고...


미국의 입장에서 중국 대륙의 공산화도 충격이었지만, 중국의 신임 정부가 1949년 소련과 동맹을 맺은 것은 절망 그 자체였다. 중소동맹 이전의 미국에게는 그나마 중국을 아시아의 유고슬로비아로 만든다는 카드를 가질 수 있었지만, 이것마저 좌절된 것이었다. (쐐기전략 실패)

중소동맹은 즉시 미국에서 도미노 이론의 공포를 야기했다. 가령, 1950년 아이젠하워는 "나는 중소동맹과 더불어 아시아가 끝장났다고 믿는다. 심지어 호주도 위험하다. 인도 그 자체도 안전하지 않다."고 적었다. 

Julia Lovell,  Shadow Cold War: The Sino-Soviet Competition for the Third World by Jeremy Friedman review – rethinking history, the guardian, 2015.


중국 공산화 이후 미국의 대응이 중소 분열을 노리는 쐐기전략, 즉 모택동을 '아시아의 티토'로 만드는 것이었다면, 

스탈린은 소련판 쐐기전략 즉 미국과 중국을 원수로 만드는 방안을 추진했고, 이는 한국전쟁을 통해 실현되었다. 

말하자면, 한국전쟁을 즈음해서 동아시아에는 두 개의 쐐기전략이 충돌했던 것이다. 중국을 두고 미국과 소련의 쐐기전략이 대립했지만, 한국전쟁을 통해 소련의 쐐기전략이 성공을 거두었고, 미국과 중국이 원수가 되었다. 심지어 미국의 국무장관 덜래스는 주은래와 만나고도 악수조차 거부할 정도였다. 

미중관계가 정상화되는데는 이후 20 여년이 더 걸리게 된다.

덧글

  • 함부르거 2017/07/08 17:29 # 답글

    그러고 보면 스탈린이 처음에는 한국전쟁을 반대하다 나중엔 찬성으로 돌아선 것도 이해가 됩니다. 1. 김일성이 성공하면 당연히 좋고 2. 만약 실패해도 중국과 미국을 갈라놓을 수 있으며 3. 중국을 약화시켜 소련에 따르게 만들거나 적어도 반대는 못하게 할 수 있다. 는 계산이 섰던 거 아닐까요. 한국전쟁에 중국이 말려든 과정을 봐도 이런 의도대로 풀린 것 같습니다. 확실히 스탈린이 모택동보다는 한 수 위였던 거 같아요.
  • 파리13구 2017/07/08 17:39 #

    중국은 한국 보다는 대만 문제를 해결하는데 관심이 있었고,

    트루먼은 대만을 주고, 중국을 소련으로부터 이탈시키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50년 여름, 모택동은 대만을 침공할 계획이었는데,

    김일성이 선수를 쳤고,

    이렇게 마오는 대만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잃고,

    이후 한국전쟁에 개입, 미국과 원수가 됩니다.
  • ㄱㄴㄷㄹ 2017/07/09 12:39 # 삭제 답글

    정황을 보면 군부는 한반도는 포기하고 대만을 유지하기 원했고 (아니, 대만은 그나마 방어할수는 있다고 했던가?)
    반대로 국무부는 대만은 버리고 남한을 유지하기 원했는데
    이런 의견대립의 결과가 결국 이도저도 아닌 애치슨 라인의 선언이라고 보아도 될까요?
  • Mavs 2017/07/09 15:07 # 삭제 답글

    순수하게 군사적으로 보면 한국보다 대만이 방어하기 훨씬 쉬웠죠. 해공군력이 거의 없는 중국은 바다를 건너기 어려웠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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