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한 미국과 소련의 다른 해석?
키신저의 경고...

회고록에서 키신저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가 미소간의 군비경쟁에서 차지하는 중요한 의미에 대해 다음을 지적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

미국에서는 쿠바 미사일 위기를 미국의 일대 승리로 기억하고 있다。 확실히 그것은 소련에 대한 큰 승리였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정부는 이 위기에서 서로 상반되는 결론을 이끌어 냈다。 미국에서는 핵실험금지와 핵확산금지조약 체결、 그리고 일정 수준에 도달하자 전략미사일 생산을 중단하는 등 군축과 데탕트 추구정책으로 이어졌으나, 소련에서는 2년 후 흐루시초프 실각의 한 요인이 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전반적인 군사력 증강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쿠바위기에 대한 소련의 반응은 1962년 말 쿠바 내 미사일 철거의 세부문제를 협의하던 소련대표 바실리 쿠즈네초프의 신랄한 말 속에서 그 전부를 읽을 수 있다。 쿠즈네초프는 미국대표 존 매클로이에게 『당신네 미국인들이 다시는 이런 치욕을 우리에게 안겨주지는 못할 거요』라고 말하였다。 소련은 그 이후 미사일과 폭격기, 탱크、 잠수함, 전투기 등 모든 형태의 군사력 중강을 위한 과감하고 조직적인 장기계획에 착수하였다。 이에 따라 1962년 쿠바위기는 하나의 역사적 전환전이 된 셈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3년이 경과한 1965년, 소련의 전략군사력은 ICBM 2백20基에 SLBM  1백基를 넘어 섰다。 다시 3년 후인 3년에는 ICBM이 8백60基로 급증하였고 SLBM이 1백20基를 넘어 섰다。 1971년 소련은 마침내 미국의 전략 군사력과 대등한 수준에 이르렀고、 그 이후도 계속 전력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소련의 군사력 규모에 대한 미국의 추정은 후에 확인된 결과와 비교해 보면 항상 과소평가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60년대에는 일반적으로 국방성이 방위예산을 더 따내기 위해 소련의 군사력을 과장하고 있다고 믿었으나, 실제는 그 반대였음이 밝혀졌다。 50년대와 60년대의 미국 정책수립자들은 소련의 군사력 증강규모를 계속 과소평가하여 실제규모는 항상 추정의 「신빙성이 가장 높은 쪽보다는 신빙성이 가장 낮은 「최악의 경우」에 더 접근하고 있었다. 소련은 미국과 대등한 전략군사력을 보유했으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증강을 거듭 하다가 1972년 1단계 전약무기 제한협정 SALT 체결을 계기로 더 이상의 증강을 중단하고 대신 질적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키신저, 白堊館時節, 서울 : 文化放送 : 京鄕新聞, 1979,pp.69-70.

by 파리13구 | 2017/03/20 15:40 | Le mond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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