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케네디 암살과 베트남 철수 신화. Le monde

키신저의 경고...

1963년 11월 케네디가 암살되지 않았다면, 미국은 베트남에서 철수했을 것이라는 이른바 올리버 스톤 사관에 대해서 데이비드 레이놀즈는 다음을 지적했다. 

1963년 11월 12일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했다.

 -<베트남 철수 문제>

뉴욕타임스의 기자 레스턴은 작가 데이비드 헬버스템에게 케네디가 이런 말을 했다고 전했다. “우리 미국은 국력에 대한 신인도를 높여야 하는데 베트남이 적당한 장소인 것 같다.” 그 뒤에 레스턴은 이 이야기를 수정하여,자신이 케네디의 말에서 추론한 것이지 대통령이 직접 그렇게 말한 바는 없다고 했다. 

1963년 11월 케네디가 암살되지 않았더라면 베트남 문제를 어떻게 했을까 하는 가정에 대해 역사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일부 학자들은 케네디가 허약한 남베트남 정부를 위해 미군을 투입하는 문제를 아주 꺼려했음을 지적한다. 아서 술레징거는 1961년 11월에 케네디가 한 말을 회상했다. “그건 술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취기가 가시면 또 마셔야 하는 겁니다.” 케네디는 베트남전은 미군이 아니라 남베트남군이 이겨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반면에 케네디가 베트남으로부터 철수했으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그는 재임 도중 미국의 지원을 증강하여 경제 원조는 물론이고 1만 6천 명의 군사 고문관을 투입했다. 또 암살당하기 직전 남베트남의 문제 많은 지도자 응오 딘 지 엠의 전복 작전을 승인했다.162

가장 중요한 질문은 1964〜1965년 남베트남 내부의 공산 게릴라와 공산주의 북베트남의 군사 공세로 남베트남이 붕괴 직전에 놓였을 때, 케네디가 살아 있었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것이다. 린든 존슨이 했던 것처럼 북베트남을 폭격하고 미군 전투 부대를 투입하여 베트남전 을 미국화했을까? 아니면 협상을 통해 철수를 시도했을까? 쿠바 미사일 위기를 성공적으로 넘긴 후 케네디는 1961년에 비해(또 존슨에 비해) 훨씬 큰 국내외적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체면을 잃지 않고 철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재직 시에는 물론이고 그전의 상원의원 시절에도 그는 베트남을 미국의 의지와 신인도를 높일 수 있는 냉전의 테스트 사례로 여겼다. 케네디가 레스턴에게 명시적으로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의 태도는 이런 생각을 암시했을 것이다. 케네디는 비록 조심스럽게 표현했지만 베트남을 미국의 국력을 과시할 장소로 분명하게 지목했다. 빈 회담 직후 자신이 더 이상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보여주어야 할 필요도 분명 작용했을 것이다. 아무튼 케네디의 암살 직전 상황은 그 자신이나 혹은 그의 후계자나 쉽사리 베트남에서 발을 뺄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빈 정상 회담은 미국이 베트남전의 수렁에 빠져드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데이비드 레이놀즈, 정상회담, 책과함께,2009.pp.30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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