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미국 CIA, 흐루쇼프는 누구인가? Le monde

키신저의 경고...


흐루쇼프

1961년 6월의 빈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 CIA는 케네디 대통령을 위해서, 회담 상대인 소련의 흐루쇼프에 대한 다음 보고서를 작성했다.

1961년의 흐루쇼프에 대한 CIA 보고서(케네디가 빈 회담을 위한 배경 자료로 읽은 것)는 전쟁에서 전사한 그의 장남 레오니드의 전쟁 스토리를 언급했지만 그 생년월일을 기재하지 는 않았다. (레오니드와 케네디는 1917년 생이었다) 만약 케네디가 1917년이라는 출생연도를 보았더라면 소련 지도자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였을지 감을 잡았을 것이다. 

CIA와 국무부의 보고서는 흐루쇼프의 성격에 대해 명확하게 보고했다. 호전적이고,머리가 잘 돌아가며,토론 기술이 뛰어나고,특히 진실한 혹은 가장 된 분노를 갑작스럽게 터뜨려 상대방을 수세에 몰아넣는 능력이 뛰어 나다. CIA 보고서는 이렇게 적었다. “그는 자신의 업적보다는 상대방의 업적을 평가함으로써 상대방을 햇갈리게 하는 노련한 능력을 갖고 있다.” 국무부 보고서는 흐루쇼프가 자기보다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을 재치로 이겨내고 자수성가한 데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고, 자신의 비천한 배경이나 소련의 지위를 폄하하는 발언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 한다고 지적했다. 이념적 선동가라기보다 실천형인 호루쇼프는 ‘정치적 신념’이 확고하다. 세상을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안경을 통해서 바라보며 그가 서방 사람들에게 즐겨 말한 것처럼,서방 사람들의 손자 세대는 모두 공산주의 사회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비전을 확고하게 믿고 있다.98

따라서 대통령은 상대가 천사에서 악마를 오가는 까다로운 인물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99 보고서들은 흐루쇼프의 우선사항은 베를린이며 그 도시의 상황은 점점 위기를 향해 치닫고 있다고 적었다. 국무부는 이런 조언을 했다. “재앙적인 오판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소련에게 이런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베를린은 미국에게 중요한 사안이며 결코 양보는 있을 수 없다.” 국가 안보 보좌관 맥조지 번디는 이렇게 적었다. “딘 애치슨 같은 매파에서 월터 리프먼 같은 중도 인사에 이르기까지 이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 동의하고 있으며,이제 이 사실을 대통령이 직접 흐루쇼프에게 확인해주어야 한다.” 베를린 문제에 관한 한 이것이 근본 사항이었고 케네디는 이를 잘 명심한 상태로 빈으로 떠났다. 핵실험에 대한 흐루쇼프의 입장이 요지부동 이듯이,베를린 문제에 대해서는 유연성이 있을 수 없었고 상대방의 의중을 알려고 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흐루쇼프는 점점 더 호전적으로 나오고 있었다. 

데이비드 레이놀즈, 정상회담, 책과함께,2009.pp.274-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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