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초 미국,"공산주의는 단수인가, 복수인가?" Le monde

키신저의 경고...


1949년 10월 1일, 모택동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선포했다. 모택동의 승리 부터 1950년 2월 15일의 중소동맹 조약 체결 동안, 미국의 관심사는 공산주의가 단수인지, 복수인지 여부에 관한 것이었다고 한다. 

맥아더의 주장처럼 공산주의가 단수라면, 모스크바와 북경도 하나이고,  미국의 중국정책은 적대적인 봉쇄정책이 되어야 했지만, 트루먼과 애치슨 처럼 공산주의가 복수이며, 특히 모택동의 중공은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다면, 미국의 정책은 중국과 소련을 이간질시키는 쐐기정책이 되어야만 했다.

방수옥에 따르면 다음과 같았다.

중소우호동맹상호원조조약은 쌍방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각종 영역에서의 전면적인 협력을 규정하고 중국 과 소련 간의 동맹관계를 확립했다. 이로써 중소동맹 협상 중 존재했던 이의 충돌은 모두 해소되었다. 중국은 소련을 수장으로 한 사회주의 진영에 가입하였고 소련은 아시아의 안보와 전략적 이익을 보장받았다. 또한 중국 공산당정권도 소련의 보호와 도움을 받았다. 이 같은 의미에서, 중소 동맹의 확립은 냉전이 유럽에서 아시아로 확대되었음을 나타낸다 (양쿠이승 2006,34). 중국과 소련이 결성한 동맹이 미국의 외교정책의 방향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사건 이전에 미국정부 내부에는 중국 공산주의에 대해 상반된 견해가 존재했다. 맥아더를 대표로 하는 군부 측은 공산주의는 모두 동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중국 공산주의는 극동지역에서의 소련의 대리자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일언일행 소련의 계획에 따를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매우 싫어했기 때문에 아시아에서도 유럽과 같이 공산주의에 대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 했다. 이와 상반되게 트루먼과 애치슨을 필두로 한 집단은 중국의 공산주의는 명백히 민족주의의 성향을 띠기 때문에 미국은 중국에 대해 유도정책을 시행하거나, 최소한 중국이 중립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견해는 중소동맹 이전에 주도적인 위치에 있었다.


방수옥, 트루먼 정부의 한반도 전략 조정에 대한 재조명, 평화학연구,제15권 5호 (2014년 12월),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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