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의 경고...


10월 1일, 모택동이 중화인민공화국 건립을 선포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은 비록 어느 정도 양대 진영의 권력 분배에 영향을 주었지만, 미국 정부 내부에서는 신 중국의 국가 성격에 대해 큰 이견이 존재했다. 1949년 10월, 미국무성은 워싱턴에서 열린 두 차례의 전문가 및 관리와의 원탁회의에서 신 중국을 인정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를 하였다. 이어 정부 내부의 주요 인사들도 이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를 벌였다. 토론에 참가한 대부분 사람들은 중공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정하는 시기와 그 조건에 대해선 의견의 차이를 보였다. 이처럼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처음 몇 달간, 미국은 신 중국을 인정하느냐에 대한 문제로 여전히 고민하고 있었다(린리민 2000,50-55). 그러나 중소관계에 대해서는 트루먼과 애치슨을 대표하는 미국무성은 중국 공산당은 본질적으로 민족주의 정당에 속하기 때문에, 중소간에 반드시 대립이 발생할거 라고 확신했다. 이와 같은 인식하에, 그들은 미국이 인내를 가지고 중국에 대한 정책에서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방수옥, 트루먼 정부의 한반도 전략 조정에 대한 재조명, 평화학연구,제15권 5호 (2014년 12월),p.118.
모택동을 스탈린과 갈등시켜서, 아시아의 티토로 만든다는 미국의 구상은
1949년 12월의 미국의 국가안보회의 48/2의 결론이기도 했다.
“미국은 적합한 정치, 심리와 경제수단을 통해 중공과 소련 간, 그리고 중국의 스탈린주의자와 그 밖의 인물들 간의 대립을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미국이 이에 간섭을 가한다는 인상을 주지 말아야 한다. 타이완은 군사 행동을 취할 정도로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미국은 갖은 노력을 다하여 필리핀, 쿠릴열도 및 일본의 총체적인 지위를 강화시켜야 한다” (NSC 48/2 1949)
방수옥, 트루먼 정부의 한반도 전략 조정에 대한 재조명, 평화학연구,제15권 5호 (2014년 12월),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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