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트루먼 독트린은 소련과의 평화공존을 위한 것이었는가? Le monde

키신저의 경고...


김정배의 논문에 따르면,

1947년 3월 12일 트루먼 독트린은 소련의 기존 세력권, 특히 동유럽을 소련의 영향권으로 인정해준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트루먼의 연설을 보면, 소련을 경계하는 수사적 표현이 인상적이다. : “나는 무장한 소수나 외부압력에 의한 정복 기도에 저항하고 있는 자유인들을 지원하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세계는 두 개의 생활양식의 충돌에 직면해 있다. 다수의 의지에 기초한 세계가 하나라면, 소수가 다수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제로 관철시키는 것은 다른 하나의 세계이다. - “나는 이 선언이 미국 대외 정책에서 일대 전환점을 이루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동유럽에 대한 트루먼 독트린의 관점은 동유럽이 사실상의 소련 영향권임을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 트루먼은 연설에서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가 민주주의와 전체주의라는 두 가지 생활방식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달리 말하면 트루먼 독트린은 미국이 동유럽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대통령 특보 클리포드의 보고서는 소련이 “동유럽에서 경쟁 세력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그곳에서 우호 정부들,즉 소련의 지배를 인정하는 정부들을 유지하려 할 것”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따라서 트루먼 독트린은 당시까지 미국의 동유럽 정책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정책 전환을 선언한 것이었다.

봉쇄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트루먼 독트린은 미국의 소련의 영향권을 인정하며, 특히 미국이 소련의 기존 세력권에 대해서 롤백(격퇴)에 나서지 않을 것임을 선언한 것이다. 대신에, 소련의 더이상의 팽창은 외교적으로 막을 것임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 바로 트루먼 독트린이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트루먼 독트린은 소련에 대한 적대 뿐만아니라 소련과의 평화공존의 의도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적대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그 적대는 전쟁이 되지 않을 것이란 의도를 가지는 것이었다.

트루먼의 특별보좌관 클리포드는 트루먼 독트린이 소련에 대한 봉쇄가 아니라 평화공존을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 “미국은 지적 · 문화적 접촉을 통해 소련 지도자들에게 미국은 공격 의도가 없으며 미국 사회의 특징은 자본주의 국가와 공산주의 국가 간의 평화적인 공존이 가능한 그런 사회임을 확신시키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이 관점은 공화당의 반덴버그 상원의원도 공감하는 바 였다. 트루먼 독트린이 선언된 다음 날, 반덴버그는 동료 의원들에게 “소련과 미국은 둘 다 전쟁과 같은 것을 원치 않는다. 때문에 양국의 공생은 당연히 가능하리라는 나의 믿음을 거듭 밝혀 둔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트루먼 독트린을 약한 수준의 봉쇄정책의 산물로 보는 것이 가능하며, 봉쇄의 군사적 성격은 강하지 않았다.

이런 미국의 봉쇄정책이 군사적 성격이 강화된 것은 1950년 한국전쟁을 통해서 였고, 봉쇄정책의 수준을 넘어, 롤백정책으로 전환된 것은 1950년 9월의 미국의 38선 돌파 결정을 통해서 였다. (봉쇄정책과 롤백정책은 다르다!)

1950년 9월 11일 백악관 국가 안전보장 회의는 만약 소련이나 중공이 참전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경우, 맥아더 장군은 작전을 38선 이북까지 연장하며 북한 점령의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른바 38선 돌파 논쟁에서 국무부 고문 조지 캐넌과 같은 국무부의 딘 러스크와 동북아시아국 국장이던 존 앨리슨(John Allison)리 견해를 달리했다. 전자가 봉쇄정책을 주장했다면, 후자가 주장한 것은 공산권에 대한 롤백이었다. 

1950년 6월 북한이 남한을 침략했을때, 캐넌은 남한을 방어하기 위해 미국의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에 찬성했다. 하지만 봉쇄정책의 논리에 따라, 그는 미국 개입의 정치적 목표는 전쟁 이전 상태로의 회귀 the status quo ante 라고 믿었다.

기질적으로 그는 반공 십자군을 반대했다. 십자군적 전쟁목표란 공산주의 독재로부터 인민을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을 의미했다. 트루먼 행정부에서, 캐넌은 미군이 38선을 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38선  돌파문제와 관련해서 미국 국무부는 그 문제로 의견이 나뉘어 있었는데, 국무부 고문이자 전직 책임자였던 조지 캐넌(George F. Kerman)의 영향 아래 있던 정책기획국은 북한 영토에서의 미국 지상군 활동에 반대했으나, 딘 러스크와 동북아시아국 국장이던 존 앨리슨(John Allison)은 그러한 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조지 캐넌은 38선 돌파 같은 모험은 유럽의 미 동맹국들을 불쾌하게 할 것이고 한국에서의 미국의 침략성을 주장하는 소련의 입지를 강화시켜 줄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한반도에 대한 소련이나 공산 중국의 직접 개입을 가져 올 수 있다고 믿었다. 반대로 앨리슨은 미국이 북한으로 진격해 북한의 도 발을 처벌하지 않는 것은 “그 지역의 평화와 안보”의 회복을 요구한 6월 27일의 유엔 안보리 결의에 위반되며, 다른 지역에서의 공산주의자들의 군사 도발을 부추길 것이라 반박했다.


참고-

김정배, 트루먼 독트린의 냉전사적 의미, 美國學論集(Journal of American Studies),Vol.1 No.- [1998]




덧글

  • 2017/03/03 12:0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Mavs 2017/03/03 21:27 # 삭제 답글

    북한에 대한 처벌은 북한 영토를 일부 점령하는 수준에서 멈추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운좋게 통일이 성공했다해도 소련, 중국과 국경을 맞댄채 냉전을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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