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딘 애치슨의 묵시록적 유럽관? Le monde

키신저의 경고...




1947년 2월 당시 딘 애치슨은 미국 국무차관이었다. 

2월말, 영국 정부가 미국에게 영국이 더이상 그리스를 지원할 수 없다고 통보해 왔다. 미국은 이에 대한 대책 수립에 나섰다. 

2월 27일, 트루먼은 의회 지도자들을 백악관에 초대, 그리스 위기 설명회를 가졌다. 국무장관 마셜이 만약 미국이 그리스를 지원하지 않으면, 그리스는 “소련의 지배하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마샬은 의원들을 납득시키지 못했다. 의원들은 마샬의 설명으로부터 미국이 영국의 부담을 떠맡고자 한다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이에 구원투수로 나선 것이 바로 딘 애치슨 국무차관이었다. 그는 그리스 · 터키 원조 문제가 영국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안보를 강화하고 공산주의의 침략과 전복에 저항하는 자유민을 강화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지키는" 문제임을 강조했다. 그는 그리스와 터키 어느 한 나라가 공산주의자들에게 전복되거나 독립을 상실할 경우 그것이 과급할 부정적 효과를 상세하고도 섬뜩하게 설명해 나아갔다.

딘 애치슨의 진단은 다음과 같았다.

 - 애치슨의 상황인식 

“소련이 터키를 통제할 수 있게 되면 소련은 거의 필연적으로 그리스와 이란으로 그의 통제권을 확대할 것이다. 소련이 그리스를 통제하면 터키는 전쟁이 있든 없든 곧 굴복할 것이고, 이란은 그 뒤를 따를 것이다. 소련이 공산주의의 압력이 점증하고 있는 이탈리아를 지배한다면 소련은 아마도 그리스, 터키, 그리고 중동을 얻게 될 것이다. ...소련의 목적은 동지중해와 중동을 통제하는 것이다. 그곳으로부터 남아시아와 아프리카로의 침투 가능성은 무한정적이다.  공산주의의 침투와 전복 기술을 사용하는 소련이 독일을 포위하고자 함은 분명하다. 프랑스에는 4명의 공산주의자가 각료에 포함되어 있으며, 그 중 한 명은 국방 장관이다. 공산주의자들은 가장 큰 노동 조합을 통제하고 있으며, 정부 부서, 공장, 군부에도 침투해 있다. 프랑스에서 소련은 언제라도 말썽을 일으킬 수가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위험스런 상황이 프랑스보다는 덜 즉각적이지만 점점 악화되고 있다.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에서 공산주의자들은 민주적 정부에 올가미를 조이고 있다. 그리스와 지중해가 소련의 통제 하에 떨어진다면, 그 점이 자유와 민주적 제도가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나라들에게 줄 물질적 - 심리적 영향은 파괴적이며 아마도 결정적일 것이다." 

김정배, 트루먼 독트린의 냉전사적 의미, 美國學論集(Journal of American Studies),Vol.1 No.- [1998],pp.84-85.

애치슨에 따르면, 만약 미국이 그리스와 터키를 지원하지 않는다면, 두 나라는 물론 프랑스와 이탈리아 그리고 중동,북아프리카 까지 소련의 영향권에 편입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미국의 2차대전 개입의 의미가 나치의 유럽 지배를 소련의 유럽 지배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뜻하게 될 수도 있었다.

결국 에치슨의 설득 작전은 성공했다. 의원들 누구도 애치슨의 설명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결국 트루먼은 자신이 직접 원조 문제를 의회와 국민에게 솔직하게 알릴 경우 지지하겠다는 반덴버그의 약속을 받아 낼 수 있었다. 

김정배, 트루먼 독트린의 냉전사적 의미, 美國學論集(Journal of American Studies),Vol.1 No.- [1998],pp.76-78.
 
그 결과 등장한 것이 3월 12일의 트루먼 독트린이었다. 

독트린의 초안을 보고 조지 캐넌은 “지나치게 당당하고 포괄적”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애치슨은 캐넌의 비판을 무시했다. 캐넌에 따르면, 트루먼 독트린은 미국외교를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는 "보편주의"에 기초했다. 만약 미국이 공산주의의 위협을 받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지 지원할 의무를 가진다면, 미국은 외교정책 실천에서 사활적 이익과 부차적 이익을 구분할 수 없게 되고, 낭비스러운 과도한 개입주의의 모험에 빠질 수 있고, 이는 미국 국력 낭비로 귀결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었다. 

미국이 1960년대에 도달한 베트남이라는 수렁의 뿌리에 바로 트루먼 독트린의 보편주의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베트남 전쟁의 종식이 정책 목표였던 헨리 키신저의 정책은 트루먼 독트린의 보편주의와 대결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덧글

  • 2017/03/02 14:53 # 답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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