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소련의 선전포고에 대한 일본 육군의 대응은? Le monde

키신저의 경고...

1945년 8월 8일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이에 따라 소련의 만주 침공이 시작되었다. “사무라이들을 죽여라!”

소련의 선전포고는 일본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8월 9일 나가사키에 2번째 원폭이 투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가사키 원폭 보다는 소련과의 전쟁이 일본 지도부의 주된 관심사였다. 

8월 9일, 오전 11시가 되기 얼마전,전시 일본의 최고의사결정 기구인 최고전쟁지도회의 the Supreme War Leadership Council, 즉 6인회의 the Big Six가 황궁 지하벙커에서 열렸다. 회의 도중인 오전 11시 30분, 나가사키에 두번째 원폭이 투하되었다는 소식이 전달되었다. 하지만 나가사키 원폭은 이날 회의 내용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했다고 한다. 회의 공식 기록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 "나가사키 원폭의 영향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 이날 회의에서, 도고도 도요다도 나가사키 원폭에 대해서도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았다.

8월 9일에 관한, 다수의 일본의 정계 지도자들의 일기에는 나가사키 원폭투하를 기술한 것은 의외로 적고, 소련참전 일색으로 도배되어 있다.소련 참전의 충격이 컸던 것이다. 

[가토 기요후미, 대일본제국 붕괴,바오,2010.p.48.]

그렇다면, 소련의 대일 선전포고에 대한 일본 육군의 대응은 어떤 것이었을까? 

<일본 육군> 

육군 중에서도 중견 엘리트층이 가장 강경한 주전파였다. 그러나 소련참전이라는 엄중한 현실을 직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본영 육군부 내에서는 소련참전의 제1보가 날아들자 즉시〈소련의 참전에 따른 전쟁지도대강>이 작성되었는데, 놀랍게도 여기에는 아직도 전쟁의 계속과 ‘황실을 중심으로 하는 국체호지 國体護持 및 국가 독립유지를 최소한’으로 해서 소련을 통한 화평교섭을 계속한다는 것을 방침으로 삼고 있었다. 게다가 여기서 중요한 움직임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계엄령 시행을 통한 군사정부 수립이라는 쿠데타 계획의 부상이었다. 

가토 기요후미, 대일본제국 붕괴,바오,2010.pp.48-49.




덧글

  • 키키 2017/02/26 23:26 # 답글

    할힌골 전투가 관동군을 비롯한 일본군에게 어지간히 충격이었나 봅니다
  • 파리13구 2017/02/27 01:31 #

    덜덜..ㅠ
  • Allemagne 2017/02/27 13:55 # 삭제 답글

    소련이 무섭다기보단 최후의 희망마저 물건너 갔다는 망연자실이죠
  • 파리13구 2017/02/27 16:19 #

    넵..
  • 진보만세 2017/02/28 10:10 # 답글

    지금도 일본의 식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자국의 가장 큰 위협은 늘 러시아로 보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공로증'이라고 해야 할까요..
  • 파리13구 2017/02/28 10:39 #

    19세기 말에도
    영국이 일본에게 공러의식을 부추긴 전례가 있습니다.

    시베리아 철도가 완공되면, 너희 일본은 끝장이라는 식의 논리입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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