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개석, 친중파 임시정부를 통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원했나? Le monde

장개석,모택동 그리고 스탈린!


배경한의 논문에 따르면, 1942년 다른 국민당 일부 간부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에 적극적이었지만, 장개석으로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장개석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1942년 12월 중순 중국 국민당 중앙집행위 비서처, 송자문에게 보낸 편지라 한다. 

장개석이 승인에 소극적이었던 것은 임시정부의 대표성을 높여, 이 임시정부를 승인하고, 지원을 통해 친중파로 만들고, 이 친중파 임시정부를 통해서 전후 한반도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12월 중순
중국 국민당 중앙집행위 비서처, 송자문에게 편지

장개석은 임시정부 승인 문제에 대해서 소극적이고 관망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1942년 12월 중순 國民黨, 중앙집행위 비서처에서 송자문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임시정부 승인의 시기를 되도록 늦출 것을 지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개석과 국민정부의 임시정부 승인에 대한 유보적 입장은 미국측 외교문서에서도 확인되고 있으나 1942년 초 중경 주재 미국대사 가우스는 국무성에 보낸 보고서에서, “중국 측이 한국임시 정부 승인을 주저하고 있는데 그 이면에는 현재의 임시정부가 일부세력만을 지지 기반으로 삼고 있어서 임시정부를 승인할 경우 다른 세력들도 또 다른 정부를 만들 우려를 중국 측이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를테면 당시의 임시정부가 한국의 독립운동세력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장개석과 국민정부는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실제로 장개석과 국민정부 측에서 임시정부 측에 독립운동세력의 통합과 단결을 여러차례 주문하기도 했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장개석나 국민정부가 임시정부의 대표성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는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독립운동세력의 분열을 이유로 승인 불가를 주장하는 중국 측의 입장은, 다른 측면에서보자면 임시정부가 독립운동세력을 대표할만한 자격을 가지도록 만들고 그런 다음 그 임시정부를 승인하는 것을 통하여 전후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중국 측의 계산된 의중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뒤에서도 상술하겠거니와 실제로 일본 패망 직후인 1945년12월 국민 정부 외교부에서 마련한 한반도 정책 속에는 한국독립당(실제로 중경 임시정부)을 중심으로 하는 친중 親中 분자를 한국내에 부식扶植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해야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었으니, 이것은 바로 임시정부를 통한 전후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행사라는 국민정부의 의도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배경한. "중일전쟁시기 蔣介石ㆍ國民政府의 對韓政策." 역사학보, 208 (2010.12),pp.282-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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