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루스벨트,"한국에 대한 장개석의 야망에 대해" Le monde

장개석,모택동 그리고 스탈린!


1943년의 카이로 회담에서 루스벨트는 중국의 장개석을 처음으로 만났다. 

11월 23일
루스벨트-장개석, 카이로에서 회담

루스벨트가 한국의 장래 문제를 꺼내자 장제스는 “한국의 독립을 허용할 필요성이 있다.”는 매우 소극적이고, 우회적인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한국의 독립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서 “중국과 영국과 미국이 협의하여 동의할 필요가 있다.”고 적고 있다. 

정일화, 카이로선언- 대한민국 독립의 문, 선한약속,2010.p.72.

11월 24일, 처칠을 만난 루스벨트는 전 날의 장개석과의 회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루스벨트, “전날 장제스를 만나 얘기할 때 그는 토의내용에 대해 매우 만족하는 것 같았는데 특히 중국은 의심할 여지없이 만주와 한국의 재점령을 포함한 광범한 야망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정일화, 카이로선언- 대한민국 독립의 문, 선한약속,2010.p.73.


루스벨트는 아시아에서의 전후 질서 구상과 관련하여

한반도 점령에 대한 장개석의 야심과 

아시아에서의 대영제국 부활에 대한 처칠의 집착을 견제해야만 했다.

카이로에서 한국의 독립 문제가 논의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덧글

  • 2017/02/23 16:2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KittyHawk 2017/02/23 17:53 # 답글

    상해 임정의 외교 담당인 조소앙도 국민당 정부의 속내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냈었다는 걸로 압니다.
  • 파리13구 2017/02/23 18:05 #

    감사합니다...
  • 전위대 2017/02/24 18:18 # 답글

    루스벨트의 해당 언급 때문에 영미는 중국에게 카이로 선언에 미영중 3국이 영토적 양심이 없다는 문구를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었죠. 뭐 장개석도 이에 대해서 수락은 했습니다만.

    문제는 루스벨트의 해당 인식 자체가 어디서 나온 건지 본인으로썬 심히 궁금할 따름입니다. 장개석의 對한반도 정책은 독립을 보증한다 외의 구체적인 내용 자체가 전혀 나오지 않았는데 말이죠. 만주 재점령 문제야 장개석이 대만, 팽호 제도와 더불어 집착했던 문제였습니다만 조선에 대해서 '재점령'을 논의했다는 것은 개인적으론 거의 뜬금없다고 보일 정도입니다. 루스벨트의 중국이나 장개석에 대한 이해 부재가 낳은 오해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만(당장 루스벨트가 카이로 회담 중에 중국에 대해 보인 오해가 꽤 많았죠. 레이 황 교수는 누가 상황을 잘못 설명한게 아닌가 하는 추론을 남기긴 했었습니다만) 자료가 부족해 더는 논하기가 어렵군요.
  • 파리13구 2017/02/25 02:01 #

    네, 자료가 부족합니다.

    아마도 카이로 회담 이전에, 루스벨트와 장개석의 접촉 과정에서

    한국 문제에 대한 양자의 입장차이가 드러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추정해보게 됩니다.
  • 전위대 2017/02/25 13:09 #

    위험하기 그지없는 개인적인 추론으론, 장개석이 만주, 대만, 팽호의 중국 수복과 일본이 중국 내부에 남긴 자산의 재접수 등을 루스벨트 앞에서 주장했고 같은 자리에서 한국 독립도 논했기 때문에 루스벨트가 그것을 중국의 세력 확장의 연장선으로 인식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만... 뭐 결국은 뇌내망상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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