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의 독소불가침 조약을 옹호하는 논리는? Le monde

키신저의 경고...


1941년 9월, 독소전쟁이 개막된 상황에서 미국 언론인 케네스 데이비스는 악마간의 동맹이라 평가를 받았던 독소불가침 조약에 대한 수정주의 해석을 전개했다.

스탈린이 독소불가침 조약을 체결한 것은 전쟁 대비를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 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준비가 되자. 정교하게 독일의 공격을 유도했다는 것이었다. 

"이번의 엄청난 세계적 위기에 대한 최종 역사를 집필될 때, 스탈린은 가장 심오하게 빛나는 전략을 통해서 문명을 구한 사람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그 전략은 국제 분쟁에서 국가 지도자들이 구사한 전략들 중에서 으뜸이었다."

Kenneth S. Davis,Have We Been Wrong about Stalin? Current History, I { September, 1941}, 11.

John Lewis Gaddis, The United States and the Origins of the Cold War, 1941–1947. New York, NY: Columbia University Press. 1972. p.39 에서 재인용.




덧글

  • 파파라치 2017/02/13 17:33 # 답글

    준비가 돼서 나온 결과가 전쟁 초반의 개박살이었군요... (소련이니까, 그리고 랜드리스가 있어서 버텼지 다른 나라 같으면 몇번은 쓸려나가고도 남았을 손실을 초반 3개월에 당한 주제에...)
  • 파리13구 2017/02/13 17:38 #

    그래서 프로파간다입니다. ㅠ
  • bernstein 2017/02/13 20:30 # 삭제

    랜드리스가 본격화 된건 43년 이후고, 41년에는 실질적으로 소련의 힘만으로 버틴것 아닌가요? 초반 3개월을 랜드리스로 버텼다는 주장의 근거가 어딘지 궁금하네요. 바그라티온 작전처럼 전쟁 후반부에 랜드리스가 큰 도움을 뒀다는 건 유명하지만요.
  • 파파라치 2017/02/14 08:09 #

    bernstein/ 초반 3개월에 그렇게 막대한 손실을 입고도 그 손실을 극복하고 궁극적으로 승리했다는 말이지 초반 3개월을 랜드리스 덕분에 버텼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고 1941년 같은 상황에서는 랜드리스고 뭐고 아무소용 없어요. 그때 소련이 독일보다 물자가 부족해서 밀린건 아니니까. 그리고 초반에 그렇게 밀리고 나니까 서부의 공업지대와 곡창을 상실한 결과로 랜드리스가 절실해 졌던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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