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 독트린과 프랑스 그리고 인도차이나.. Le monde

키신저의 경고...


위키백과에 따르면, 트루먼 독트린은 다음과 같다. 

트루먼 독트린(영어: Truman Doctrine)은 1947년 3월 미국 대통령 트루먼이 의회에서 선언한 미국 외교정책에 관한 원칙으로서 그 내용은 공산주의 확대를 저지하기 위하여 자유와 독립의 유지에 노력하며, 소수의 정부지배를 거부하는 의사를 가진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하여 군사적·경제적 원조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당시 이 원칙에 따라 그리스와 터키의 반공 정부에 미국이 군사적, 경제적으로 원조를 했다.

전후 재정 위기에 직면한 영국 정부가 그리스,터키에 대한 원조를 중단한다고 통보해 왔다. 이에 트루먼은 3월 12일 트루먼 독트린을 발표, 그리스와 터키를 원조할 것을 의회에 요청했다. - “나는 무장한 소수나 외부압력에 의한 정복 기도에 저항하고 있는 자유인들을 지원하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세계는 두 개의 생활양식의 충돌에 직면해 있다. 다수의 의지에 기초한 세계가 하나라면, 소수가 다수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제로 관철시키는 것은 다른 하나의 세계이다. - “나는 이 선언이 미국 대외 정책에서 일대 전환점을 이루었다고 믿었다.” 

트루만, 세계의 대회고록전집 17, 학림출판사, 1977.p.305

그렇다면, 전후 인도차이나에서 영향력 회복을 위해서 호치민 세력과 싸우던 프랑스는 트루먼 독트린을 어떻게 인식했을까? "트루먼 만세였다."

트루먼 독트린과 프랑스 그리고 인도차이나

1947년 3월 냉전이 가시화되면서 베트남 인민의 염원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유럽의 방어는 아시아의 집단안보체제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트루먼 독트린에 의해서 루스벨트의 민족자결주의 지원 정책은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트루먼 독트린은 프랑스 지지와 베트남 지지라는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프랑스는 자기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고 효과적으로 선전하였으며,트루먼이 주장했던 ‘자유민’ 이란 단어는 베트남 인민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프랑스를 지칭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

당시 미 국무부에서 정세분석가로 일했고,훗날 중견 정책 입안자로 이름을 떨쳤던 월리엄 번디 w. Bundy 도 ‘트루먼의 의향은 프랑스가 이해한 것과 동일하다’ 며 프랑스의 손을 들어주었다. 번디는 새로운 식민지주의의 용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식민지 베트남의 새로운 고통은 당시 프랑스 정부와 국민들의 생각을 고려 해 볼 때,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프랑스는 결코 베트남에서 철수할 생각이 없었다. 만약 미국이 프랑스에게 ‘돕지 않겠다’고 말했다면,북대서양조약기구 NATO 국가들의 효과적인 조직화와 재무장이 상당히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유럽과 연합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고,따라서 베트남 통치는 프랑스 방식대로 진행되었다. 

마이클 매클리어, 베트남 10000일의 전쟁, 을유문화사, 2002,pp.60-61.

원래 미국외교정책에는 반-제국주의 전통이 강했다. 특히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프랑스 제국주의, 특히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지배를 착취로 간주했다. 전쟁 동안 루스벨트는 전후에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지배를 허용해서된 안되며, 대신에 강대국 신탁통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프랑스가 해석한 것처럼, 트루먼 독트린은 베트남의 프랑스의 행동을 제국주의의 부활 몸부림이기 보다는 호치민 공산주의 세력과의 투쟁이라는 냉전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미국은 베트남이라는 수렁 속의 재앙으로 한발 한발 접근해 나갔다.






덧글

  • 까마귀옹 2017/02/12 13:37 # 답글

    맥나마라의 말마따나 '그때 우리는 맛이 갔던 것 같습니다'.
  • 파리13구 2017/02/12 13:38 #

    흐흑 ㅠ
  • Mavs 2017/02/12 18:15 # 삭제 답글

    백인의 짐이 19세기의 기독교 전파에서 20세기의 민주주 전파로 비뀌었죠. 결국은 세력 팽창과 유지를 위한 허울이었을 뿐...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