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미국이 수소폭탄 개발을 결정한 이유는? Le monde

키신저의 경고...



1949년 후반의 국제정치의 역사는 미국에게 충격의 연속이었다.

중국에서의 국공내전에서 모택통의 공산당이 승리하여, 미국이 중국을 잃어버린 충격이 하나요, 다른 하나는 소련의 핵실험이었다.

1949년 8월 29일, 소련이 첫 번째 핵실험을 실시했다. 대부분의 미국 군부 지도자들은 소련이 1952년경에 가서야 핵무기 개발에 성공할 것이라 판단했다. 

[정성화. "미국의 대소 핵정책 : 트루만, 아이젠하워 시대." 미국사연구, 9 (1999.5),p.201.]

이렇게 짧았던 미국의 핵무기 독점시대가 막을 내렸다. 미소의 핵무기 경쟁이 강화되었다. 

독점적 지위를 상실한 미국은 핵무력의 우위를 유지할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고, 그 방안 중 하나로 제기된 것이 바로 수소폭탄 개발이었다.

11월 19일

트루먼, 수소폭탄 개발을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

1949년 11월 19일 트루만은 수폭 개발의 필요을 심의하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국가안전보장회의 내에 설치하고 애치슨 , 국방장관 존슨 (Edwin Johnson), 릴리엔탈을 특별위원으로 임명 했다. 수폭 개발에 대한 특별위원들의 견해는 소속된 기관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수폭 개발에 가장 강력한 이의를 제기한 기관은 원자력위원회이었다. 엄청한 파괴력을 지닌 수폭이야말로 무엇보다도 비도덕적인 무기라고 주장하는 오펜하이머와 릴리엔탈은 미국은 수폭 개발을 포기함으로서 소련의 핵무기 개발로 야기된 군비경쟁을 회피하고 평화를 달성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신 이들은 국지적 사용이 가능한 보다 작은 전술 핵무기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존슨과 군부는 처음에는 수폭 개발에 소극적이었다. 이들은 수폭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원폭에 사용되는 핵원료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수폭의 개발은 원폭의 생산을 지연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더구나 소련내 제한된 규모의 공격 목표물과 비교할 때 수폭은 지나친 파괴력을 지니고 있어 비효율적이었다. 반면 애치슨은 수폭의 파괴력에 대해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 3명의 위원들은 열띤 토론을 거쳐 1950년 1월 31일 수폭의 개발을 지지한다는 보고서를 트루만에게 제출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릴리엔탈은 마지막까지 수폭의 개발을 포기하고 재래식 무기에 의존하기를 원했으나 트루만의 결심은 확고했다. 회의는 7분만에 끝나고 트루만은 “수소폭탄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핵무기에 대한 작업을 계속하라"고 원자력위원회에게 지시했다. 

정성화. "미국의 대소 핵정책 : 트루만, 아이젠하워 시대." 미국사연구, 9 (1999.5),p.202.


원자폭탄과 열핵폭탄(수소폭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오펜하이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질문: 박사님,당신은 일본에 원자 폭탄을 투하할 때 표적 선정을 도왔다고 진술하셨습니다. 아닙니까?
답변: 맞습니다.
질문: 당신은 선정한 표적에 원자 폭탄을 투하하면 민간인 수천 명이 살상당 하리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맞습니까?
답변: 그렇게 많이는 아니었습니다.
질문: 죽거나 다친 사람은 몇 명입니까?
답변: 7만명입니다
질문: 관련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까?
답변: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질문: 히로시마에 열핵 폭탄을 투하하는 일이라면 지지했을까요?

답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질문: 왜죠?

답변: 표적이 너무 작습니다.


리처드 로즈, 수소 폭탄 만들기- 20세기를 지배한 암흑의 태양, 사이언스 클래식 28 ,사이언스북스,2016.p.692.


오펜하이머에 따르면, 수소폭탄의 표적이 되기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표적으로 너무 작았다는 것이었다.




덧글

  • 함부르거 2017/02/07 19:57 # 답글

    리처드 로즈의 '원자폭탄 만들기'는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 작년에 후편(?)이 나왔군요. 한번 읽어 봐야겠습니다. 에드워드 텔러도 르메이 못지 않은 사람이죠...
  • 파리13구 2017/02/07 21:31 #

    추천합니다.
  • 무지개빛 미카 2017/02/07 20:01 # 답글

    그리고 1년 뒤 1950년 6월 25일 스탈린의 소련과 모택동의 중공의 지원을 받은 북조선 김씨왕조 혹부리 대마왕 김일성이 이승만의 대한민국을 향해 전쟁을 시작하고 이 때부터 미국은 진짜 냉전을 시작합니다.

    일본만 이 때문에 노다지 났고, 지금의 일본이 시작한거죠. 김일성 개새끼. 지금의 일본을 만든 건 모두 다 혹부리 대마왕 김일성이 재일 큰 공을 새운 것임. 일본의 전후 정치세력 및 대일본 제국군 잔당놈들은 한 거 암 것도 없음. 기시 노부스케는 김일성 초상화 걸어놓고 절했을런지도 모를 일이지.
  • 역성혁명 2017/02/07 21:09 # 답글

    IPTV를 통해 BBC 핵첩보 다큐멘터리 5부작을 본적이있습니다. 멘하탄프로젝트와 영국의 핵개발 정보를 소비에트에 알려준 물리학자 푸크스, 2중첩자를 자처하며 소련 후르시초프시기에 핵무장정보를 알려주며 2중첩자를 지처했던 펜코프스키, 수소폭탄의 개발을 둘러싸고 갈등했던 애드워드 텔러와 오펜하이머, 중동의 전면적인 핵무장 가능성을 불러오면서까지 핵개발을 강행했던 이스라엘의 극비를 영국 선데이타임즈에 고발하여 모사드의 손에 납치당한 바누누(지금도 자유의 몸은 아닙니다. 외부인 접촉금지에 가택연금중으로 알고있음), 파키스탄의 핵무장에 기여하고, 그기술을 팔아먹으며 위험국가들에게 돈을 받은 압둘카드르칸. 다 보시면 흥미진진할것입니다.
  • 파리13구 2017/02/07 21:31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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