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의 경고...
1945년 4월에
중국 주재 미국 대사 헐리가 모스크바를 방문, 스탈린과 면담했다 .
스탈린은 중국 주재 미국대사 헐리(P. Hurley)와의 두 차례 회담에서 장개석을 “사심이 없는 애국자”라 칭하면서,정치적으로 중공에 양보해 군령을 통일할 것을 주장했다.
스탈린과 몰로토프는 중국공산당 사람들을 진정한 공산당원 으로 볼 수 없고 소련은 중국공산당을 지원한 적도,앞으로 지원하지도 않을 것이라 말하고,미국과 마찬가지로 모스크바 역시 장개석의 지도하의 통 일되고 민주적인 중국을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그 직후 소련공산당 이론지 『볼셰비키』(제11~12기)에 게재된 중국 정세에 관한 글에서,“전후 중국은 자신의 정의로운 임무를 더욱 신속히 완수하기 위해 전쟁 시기의 모든 민주주의 정당,단체 및 조직으로 강력한 ‘전국 민주전선’을 구성할 필요가 있으며,이렇게 하는 것만이 승리를 앞당겨 중국이 강력하고 독립된 민주국가로 거듭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스탈린의 ‘연립정부 정책’이 아시아에서 재현되는 것과 같았다.
션즈화, 조선전쟁의 재탐구- 중국·소련·조선의 협력과 갈등,선인,2014.pp.156-157.
1945년 4월 스탈린의 관심사는
중국에서의 공산주의의 승리라기 보다는
러일전쟁 이후 러시아가 중국에서 상실한 이권을 회복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의 이익은 얄타회담에서 보장되었고,
미국의 보장 조건은 스탈린이 중국에서 모택동이 아닌 장개석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스탈린은 모택동이 아닌 장개석의 정통성을 인정하면서, 중국에서의 소련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수호하려고 했다.













덧글
물론 이후 스탈린의 관점 변화는 알 수 있습니다.
1945년의 홍군의 무장과 만주 점거는 소련의 협조를 바탕으로 이뤄졌으며 스탈린은 국민당군의 다롄 입항 등을 거부하면서 국민당의 만주에서의 세력 확보를 초기에 분명히 방해했습니다. 이 때문에 장개석이 분노하여 미국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한편 소련 연락관을 추방하기도 했었습니다만. 일단 당시 스탈린이 장개석을 중국 정통정권으로 보고 국민정부와 계속 상대하고 있었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습니다만 '편향'이란 말의 뜻이 당시 스탈린이 국민정부와 장개석의 편의를 봐주면서 명백히 그쪽 편을 들었다는 의미라면 저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다만 얄타 회담의 시점에서,
스탈린은 장개석을 인정하면서,
러일전쟁 이후 상실한 중국에서의 이권과 미국과의 협력 기조를 모두 살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마오 보다는 장개석 체제를 지지하는데 보다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얄타의 시점에서,
소련이 장개석을 지원하면, 중국 이권+ 미국 협력을 얻는데,
소련이 모택동을 지원하면 중국 이권 불확실 + 미국의 불신을 얻는다는 점에서
스탈린의 초기 계산이 있었다고 봅니다.
물론 스탈린의 계산은 이후 변합니다.
2. 다만 지적 및 부연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제가 당시 중국사를 공부하는 주 소스로 취하고 있던 장개석비록이나 리처드 번스타인의 저서는 스탈린의 국민정부를 지지하고 모택동을 비하하는 발언 자체는 미국을 속이기 위한 기만책으로 해석하고 있었고, 스탈린이 미국을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는 홍군을 최대한 지원했고 그 규모가 홍군의 전투력 강화에 획기적인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저도 이 관점을 채택했다는 점을 먼저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물론 스탈린이 그 시점에서 바로 국민정부 전복과 중국 공산화 자체를 획책하고 있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소련이 국민정부를 동등하고 교류할 파트너가 아닌, 소련의 이권을 위한 도구로 여겼다고 보는 것입니다.(뭔가 횡설수설하는 것이 뭔 말을 하는 지 모르는 느낌입니다만 통렬히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 마지막으로 스탈린의 '지지'에 대해서 장개석은 끊임없이 불안, 공포, 절망을 드러냈고 소련과의 협정 체결 이후에는 "우리의 이상은 모조리 허망한 꿈나라로 사라져버렸다"고 좌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