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이탈이아와 프랑스에서의 5월 위기란? Le monde

키신저의 경고...


냉전의 역사에서 1947년은 냉전의 세계적 고착화가 진행된 시기라고 해석 가능하다.

1월에, 중국에서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을 중재하려던 마셜 특사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 

1월말 남한의 하지 장군은 한국문제에 대한 어떤 적극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이상, 한국은 아마 사실상의 내란에 빠질지도 모른다고 본국에 보고했다. 

[트루만, 세계의 대회고록전집 17, 학림출판사, 1977.p.384.]

2월 말, 런던, 그리스와 터키에 대한 원조 중단을 발표했다.

이 발표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 3월 12일의 트루먼 독트린이었다 : 3월 12일, 트루먼 독트린 발표 : 그리스와 터키를 원조할 것을 의회에 요청했다. - “나는 무장한 소수나 외부압력에 의한 정복 기도에 저항하고 있는 자유인들을 지원하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세계는 두 개의 생활양식의 충돌에 직면해 있다. 다수의 의지에 기초한 세계가 하나라면, 소수가 다수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제로 관철시키는 것은 다른 하나의 세계이다. - “나는 이 선언이 미국 대외 정책에서 일대 전환점을 이루었다고 믿었다.” 

[트루만, 세계의 대회고록전집 17, 학림출판사, 1977.p.305]

4월 28일, 국무장관 조지 마셜의 라디오 연설 에서 "모스크바와의 타협은 불가능하다!"라고 선언했다.

이러한 시대적 맥락에서 1947년 5월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의 위기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위키백과에 따르면, 1947년 5월의 축출 위기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공산당이 정부에서 축출당한 사건을 말한다. 위기와 더불어 유럽에서 냉전이 시작되었다고 평가가 가능하다.

이탈리아에서 알치데 데 가스페리가 이끄는 기독 민주당 정부가 인기를 잃으면서, 좌파 연정이 정권을 장악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가스페리 정부는 미국 대통령 트루먼의 압력을 받아, 이탈리아 공산당 출신 각료들을 축출했다.

프랑스에서, 연정 내부 각료들의 정책 갈등이 문제가되고, 프랑스 공산당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면서, 정부 차원의 위기가 발생했다. 공산당은 인도차이나 전쟁,마다가스카르 반란,임금 동결 문제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냈다. 공산당 각료들은 정부의 임금 정책에 반대했고, 5월 5일, 정부에서 쫓겨났다. 윌리엄스 같은 역사가는 정부에서의 공산당의 축출을 프랑스 제4공화국의 조종을 울린 사건으로, 제4공화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해석했다. 

공산당이 정부에서 배제된 직후, 6월 5일 마셜 플랜이 발표되었고, 마셜플랜을 통해서 프랑스에서 냉전에서 미국 세력권으로의 편입을 강화시켰다. 

1947년 5월 위기는 냉전의 수정주의 시각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크렘린 시각에서 공산당의 힘이 강한 서유럽의 주요 국가에서 이들이 연정에서 배제된 것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크렘린의 시각에서, 미국이 서유럽에서 연정을 파괴했다면, 자신의 세력권인 동유럽에서도 똑같이 해도 된다는 청신호로 간주하는 것도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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