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얄타회담과 장개석의 절망...ㅠ Le monde

장개석,모택동 그리고 스탈린!

<사진-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의 장개석과 루스벨트>


1945년 2월의 얄타 회담에서 소련의 대 일본전쟁 참전의 대가로 

스탈린은 다음을 요구했다.

대일전 참전 문제- 스탈린의 요구

첫째로 스탈린은 1905년 러시아가 일본에게 잃은 영토들에 대한 권리를 되찾기를 원했다. 사할린 섬 남부와 일본의 북쪽에 있는 쿠릴 열도의 몇 개 섬이다. 그곳들은 소련이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고 있었다. 중국에 관해서 스탈린은 역시 러시아가 1905년 일본에게 빼앗긴 몇 가지 커다란 이권을 원했다. 소련은 만주 철도에 대한 통제권과 랴오둥 반도 남단의 부동항인 뤼순항의 영구 조차,인근의 항구 도시 다롄에 대한 통제권을 요구했다. 그리고 소련은 외몽골의 현재 상태를 인정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곳은 명목상으로는 독립국이었지만 소련이 지배하는 위성국가였고,한때 청나라에 속했기 때문에 중국이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스탈린은 일본과의 전쟁에 참여하는 대가로 일본이 북중국에서 자기네 대신에 차지하고 있던 식민지 특권을 부활시키려는 것이었다. 

리처드 번스타인, 1945 중국\미국의 치명적 선택,책과함께,2014.pp.304-305.

레이 황에 따르면, 1945년 일본에 대한 최후 승리가 눈앞에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장개석은 기뻐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특히 얄타 회담에서의 스탈린과 루스벨트의 비밀 합의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장개석은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장개석 - 최후의 승리가 다가오자, 장제스는 일본보다는 스탈린과 중국 공산당에 대해 더 큰 우려를 표명했다. 그가 얄타 협정의 정확한 내용을 알게 된 것은 헐리(미국 대사)가 그에게 그 내용을 털어놓은 5월 22일에 이르러서였다. 또한 쑹쯔원(외교부장)이 모스크바로 떠나기 전날,그는 소련대사 페트로프Apollon Petrov를 맞이했다. 페트로프는 우호조약을 위한 “예비적 전제”로서 얄타 협정의 내용과 똑같은 조건들을 내놓았다. 사실 협상의 여지는 거의 없었다. 외몽골의 독립을 승인하는 것 외에,조약은 1898년 당시 차르 시대의 소련이 만주에서 보유하고 있던 특권들을 소련에게 돌려주었다. 쑹쯔원이 기껏 고칠 수 있었던 것은 뤼순 항의 지위였다. 원래 소련은 뤼순의 조차를 요구했으나,두 열강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해군 기지로 바뀌었다.

비공식적으로,장제스는 2월 이후 루스벨트와 스탈린의 비밀 회담”에 관해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7월까지 그의 일기는 얄타 회담을 17차례 언급했다. 그의 반응은 “근심과 의문”(1945년 2월 2일),그리고 “끝없는 슬픔과 고민”(I945년 6월 19일)으로 기록되었고, “우리의 항전으로 세워진 모든 이상이 꿈나라의 환상으로 변해 버렸구나!”(1945년 3월 15일)라는 말에서 절정에 달했다. 

레이 황, 장제스의 일기를 읽다, 푸른역사,2009,pp.519-520.


 



덧글

  • 역성혁명 2017/02/01 07:06 # 답글

    그리고 우리 한반도의 운명도 결정되었죠. 절망적으로 말입니다.
  • 파리13구 2017/02/01 07:12 #

    흐흑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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