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벨트가 스테티니어스를 국무장관에 임명한 이유는? Le monde

키신저의 경고...


에드워드 스테티니어스 Edward Stettinius Jr.는 1944년 12월 1일-1945년 6월 27일까지 미국 국무장관이었고, 미국 외교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대의 미국외교의 수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외교의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잊혀진 인물이다.

루스벨트는 왜 스테티니어스를 국무장관에 임명했을까?

이것은 리처드 닉슨이 윌리엄 로저스를 국무장관에 기용한 것와 유사한 배경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닉슨은 외교문제에 대한 로저스의 무지를 자산으로 간주했다. 왜냐하면, 이것이 외교정책 결정을 백악관이 관장하는 것을 보장했기 때문이었다. [ 말하자면, 외교정책에 대해서 결정을 내리면, 국무부의 로저는 협상을 통해 이를 실천하면 그만이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어떤 국무장관도, 대통령이 지명자가 대외 관계에 무지했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임명한 사례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 키신저의 평가다. 

리처드 번스타인에 따르면 스테티니어스에게도 유사한 해석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이 시기에 미중 정책을 떠맡은 유일한 아마추어는 아니었다. 루스벨트의 새 국무부 장관이자 미국 대외 정책의 역사에서 아주 두드러지는 위치를 차지하지는 못하는 에드워드 스테티니어스 Edward Stettinius도 그런 사람의 하나였다. 그는 헐리와 마찬가지로 거의 우연으로 임명되었다. 국무부 장관이 필요해졌을 때 마침 눈에 띄었을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중국의 국민당과 공산당 양쪽의 상대역들과 거북한 대조를 이루었다. 국민당 쪽은 약삭빠르고 연줄이 좋은 쑹쯔원이었고, 공산당 쪽은 극도로 기민하고 경험이 많은 저우언라이였다.
스테티니어스는 롱아일랜드의 농장에서 성장했고, 제너럴모터스(GM)와 유에스스틸(USS)에서 경영진으로 일했다. 그 후 1941년에 무기 대여 프로그램 관리국장이 되었고, 1943년에 국무부 차관에 올랐다. 그는 분명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전쟁물자위원회 (WRB) 위원장으로 활동한 것을 포함하여 그의 경험은 전적으로 국내 문제에 한정되어 있었다. 다만 무기 대여 프로그램의 관리국장으로서 제한적으로 대외 업무를 다루어보았을 뿐이다. 
역사가들은 1944년 스테티니어스를 국무부 장관에 임명한 것을 두고 루스벨트가 국무부를 건너뛰고 자신의 생각대로 대외 정책을 운용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중 국에 관해서는 대통령이 신임하는 조언자 해리 홉킨스Harry Hopkins를 통해 장제스와 의사소통을 하곤 했다. 홉킨스는 장제스의 동서 쿵샹시 및 처남 쑹쯔원과 긴밀한 접촉을 유지하고 있었고, 이들이 가끔 워싱턴에 오기도 했다. 


리처드 번스타인, 1945 중국\미국의 치명적 선택,책과함께,2014.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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