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1914년과 1962년의 위기의 차이는? Le monde

키신저의 경고...


1914년은 제1차세계대전의 위기가 1962년에는 쿠바 미사일 위기가 있었다.

두 개의 위기는 세상을 위험에 빠지게 만들었지만, 위기에 대처한 정치가들의 대응이 달랐다.

심리학자 브라이트의 지적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1914년의 지도자들은 전쟁에 따른 재앙의 결과의 정도를 예측할 수 없었던 반면,

1962년의 초강대국 지도자들인 케네디와 흐루쇼프는 핵무기가 동원한 제3차세계대전의 재앙적 결과는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수정구슬 효과 ‘the crystal ball effect’ 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핵무기를 가진 초강대국의 지도자들은, 그들이 만약 미치지 않았다면, 수정구슬을 통해 치유불가능한 핵전쟁의 재앙이라는 같은 이미지를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따라서 책임감있는 지도자라면,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을 찾는 것이 자신의 역할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쿠바 미사일 위기가 한 창인 가운데, 쿠바에 소련 미사일이 배치 중임을 텔레비전을 통해 공개한 직후, 케네디는 다음 발언을 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책임이라는 짐을 지면되고, 참모들은 신선한 조언을 해주면 된다."


참고-

Crawford, Neta C. "The Passion of World Politics: Propositions on Emotion and Emotional Relationships." International Security 24, no. 4 (2000),p.139.


위기 상황에서 정치가에게 공포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

물론, 정치가가 공포에 압도되어, 재앙적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62년에 케네디가 그랬다면, 미국 군부 강경파의 조언을 실천했을 수도 있고, 그 결과는 핵전쟁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케네디에게 핵전쟁의 공포는 자제를 바탕으로한 위기 해소 방안을 모색하게 만들었다. 

미소 냉전에서, 핵전쟁의 공포가 양대 초강대국 지도자들을 자제하게 만들었다면, 냉전의 공포는 냉전의 장기적 평화의 감정적 기초였다고 할 수 있다.  



덧글

  • ㅏㅏㅜㅇ 2017/01/18 15:10 # 답글

    텍사스 총기휴대 사진들 보면 사소한 시비가 붙을만한 상황에서도 누구나 조심스러워질거같던데 그거랑 비슷하지않나 싶습니다
  • 까마귀옹 2017/01/18 16:04 # 답글

    1차 대전 직전의 각국 지도자들과 시민들은, 전쟁이 터져도 한 2~3달 정도면 가볍게 끝날 거라고 생각했죠. 이유야 여럿 있겠습니다만......

  • 파리13구 2017/01/19 02:33 #

    여름에 시작한 전쟁을 크리스마스 이전까지 끝낸다고 기대했지만...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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