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초 미국 군사전략과 해군의 반발... Le monde

키신저의 경고...

1945년 해군의 날 행사에 참석한 트루먼 대통령


냉전의 역사에서 제독들의 반발 "Revolt of the Admirals" 이라 알려진 사건은 미군의 퇴역 그리고 현직의 제독들이 해리 트루먼 대통령과 루이스 존슨 국방장관의 정책에 공개적으로 반발한 사건을 말한다. 대통령과 국방장관은 미국 공군이 수행하는 전략 핵폭격을 강조하면서, 공군의 핵폭격을 국가와 국익을 방어할 수 있는 주요 수단임을 인정했다. 해군의 항명 사태가 발생한 것은 1949년으로 당시 정부는 미국 군사비 지출의 과감한 감축을 추진 중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 정부는 전쟁을 수행을 위해서 필요했던 대규모 재정 지출 적자에 우려했다. 트루먼 정부가 각 군에 병력 감축과 평상시 군으로의 복귀를 명령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1944년 5월 9일, 합동참모본부는 4인 (육군 2명,해군 2명) 으로 구성된 국방 재조직을 위한 특별 위원회 Special Committee for Reorganization of National Defense 를 구성했다. 위원장은 제임스 리처드슨 제독이었다. 위원회는 1945년 4월 11일에 위원장이 반대하는 가운데, 결과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의 주요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단일한 군사 정부 조직의 창설, 둘째, 공군 독립을 통한, 3개의 동등한 지위를 가진 군의 구성, 셋째, 모든 군에 대해서 한명의 최고 지휘관이 전략 계획을 지휘하고, 현장의 군사 작전을 명령한다. 넷째, 단일한 군사 보급 체계의 구축, 다섯째, 미군 합동참모본부는 지휘권이 없는 대통령에 대한 군사전략 자문과 예산 관리 업무만을 담당하게 한다.

리처드슨 위원장이 보고서에 반대한 것은 해군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었다. 3군체계 속에서 해군의 위상 추락을 우려했던 것이다. 이 속에서, 해군이 자체의 공군력과 육상부대를 가지는 것 자체가 의문시 될까 우려했던 것이다.

제2차세계대전 말에, 미국 해군은 역사상 최대 함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트루먼 정부는 즉시 전쟁을 위한 무기 제작의 중단을 명령했고, 1년 안에 지출의 66%를 줄이고, 이후 4년 동안 지출의 90%를 삭감하도록 지시했다. 육군과 공군은 소수의 실전 배치 중인 전투 기기를 보유할 수 있으며, 남은 무기를 해체하거나, 매각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미국 해군은 자신들이 1년 이상 걸려서 만든 새로운 함정을 퇴역시키고, 해체하라는 명령에 사기의 저하를 경험했다. 

1946년 미국 공군 장군들은 핵의 시대의 늘어난 파괴력을 믿으면서, 재래식 군사력의 가치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공군 장군들은 핵의 시대에 다른 군(육군,해군)의 군사력은 시대착오적인 것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들은 국방의 미래가 핵무기를 나르는 장거리 폭격기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 공군의 주장을 정부가 동의했고, 다른 군의 의미있는 공헌이 의문시되었다.

1947년 공화당이 주도하는 의회와 더불어 트루먼 정부는 국가 부채가 국가의 장기적인 안정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믿었다. 국방예산을 1949년에 국내총생산의 4%로 감축시키기로 결정했다. 이런 국방예산 감축의 바람 속에서 해군은 자신의 새로운 임무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47년의 국가안보법의 통과와 함께, 트루먼 대통령은 국방예산을 450억 달러에서 143억 달러로 감축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모든 미국 국방 조직에 심각한 압력이 되었다.

새로 독립한 공군의 장군들은 새로운 독트린을 강조했다 : 핵무기를 통한 전략 폭격이 미래 전쟁의 승리를 위한 유일한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이며, 가상의 적국이 진주만과 같은 미국에 대한 기습 공격을 감행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 것이다. 이 독트린의 실천을 위해서, 공군이 국가의 최대 우선 순위가 되며, 미 공군은 미국 본토에 전략 폭격기 기단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군의 독트린에 대해 미 해군이 반발했다. 그들은 태평양 전쟁에서의 항공모함의 대활약을 상기시키면서, 전술적 해군력과 항공모함이 국방을 위해서 본질적이라 주장했다. 해군 지휘부는 전략 폭격만으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믿었다. 해군은 또한 적의 본토의 인구 중심지 파괴를 위해서 핵무기를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도덕적인 반대 주장도 내놓았다. 

해군은 초대형 항공모함 건조를 주장했다. 신형 초대형 항공모함이 핵 억지라는 전략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급의 신형 항모는 전략 폭격기 운용을 가능하게 할 것이었다. 각 항모가 14대의 중폭격기를 탑재할 것이었다. 112기의 핵무기 투하가 가능한, 미국급 항공모함은 핵 억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해군 제독들은 앞으로 5년 동안 8척의 미국급 항공모함의 건설을 위한 재원마련을 요구했다.

전직 해군장관이자, 초대 국방장관 제임스 포레스털이 해군의 입장을 지지했고, 1948년 7월 28일에 5척의 미국급 신형 항공모함 건조를 승인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1948년 11월에 재선에 성공한 트루먼 대통령은 포레스털에게 국방예산 감축이란 정부 계획에 따를 것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군의 감축이 더딘 것으로 보였고, 1949년 3월말, 트루먼은 포레스털 장관을 해임시키고, 루이스 존슨을 신임 국방장관에 임명했다. 존슨은 트루먼은 국방예산 감축 계획을 지지했고, 재정적으로 공군의 입장을 선호했다. 공군은 해군의 미국급 항모 건조 계획에 반대했다. 미 공군 기획자들은 핵무기를 탑재한 장거리 전략 폭격기의 시대에, 초대형 항모 건조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간주했다. 

1949년 4월 23일, 국방장관 루이스 존슨이 미국급 항모의 건조 취소를 명령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이 취소 명령에 대한 항의로 1949년 5월 24일, 해군장관 존 설리번과 다수의 해군 제독들이 사임했다.


참고-

영문 위키페디아 관련 항목.



덧글

  • 섹사 2017/01/16 13:23 # 답글

    군별간에 알력이 있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잘 읽었습니다!
  • 파리13구 2017/01/16 13:24 #

    감사합니다. ^^
  • Mavs 2017/01/16 15:34 # 삭제 답글

    그리고 1950년이 되자 퇴역시킨 항모들을 도로 취역시키게 되는데...
  • 블루 2017/01/16 19:02 # 답글

    저당시 미국인은 의무적인 국채구매액을 포함한 납세율이 거의 90%에 달했습니다.
    그러니까 비용을 증명하지 못한 거의 모든 소득을 국가가 삥뜯고
    서비스로 국채쪼가리를 떠넘겼죠.
    그럼에도 국가부채 비율이 100%에 육박했죠.

    저걸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화두였는데 전후대호황으로 GDP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부채가 작아져 버렸죠.
    그렇게 될지 알았다면 저렇게 가혹한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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