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승리한 미국이 공포를 느낀 이유는? Le monde

키신저의 경고...


중요하고 치명적인 전쟁에서의 승리가 인간에게 주는 감정이란 무엇일까? 전후 미래의 낙관에 기초한 행복이 아닐까? 제2차 세계대전 승리 직후의 전승 기념식 사진을 보면, 당시의 환호 분위기를 알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차세계대전 말의 상태에 대해서 낙관 보다는 비관을, 당시 상황에 대해 절망 가득한 공포를 느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전쟁 직후에 스탈린 체제의 본질을 위협으로 간주하고, 그것의 가능한 팽창을 공포로 받아들였다. 그 팽창은 소련의 붉은군대가 도달한 동유럽과 발칸에서는 이미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역사의 역설이었을까? 제2차세계대전은 파시즘에 대항한 성공적이고,필요했고 그리고 매우 정당한 전쟁이었지만, 전후 유럽 상황을 보면, 이것이 공산주의 확산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했다는 것이었다. 

히틀러의 패배 이후에, 다수의 유럽인들이 공산주의를 미래의 물결로 간주했다. 붉은 군대가 점령한 곳은 이미 선택의 여지가 제한적이었고, 그들의 힘이 미치지 않은 서유럽에서도 공산주의자들은 합법적 수단에 의한 권력 쟁취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1933년 독일에서 나치가 합법의 외피 속에서 권력을 장악했던 것처럼 말이다. 

스탈린 체제는 폴란드, 루마니아,헝가리에서 이미 현실이 되고 있었다. 심지어 서유럽에서도 공산주의 체제가 스탈린이 손가락하나 까닥하지 않고도 확산될 수 있다는 위협은 공포 그 자체였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의 공산주의자들의 힘이 그만큼 강했다.      

공산주의 확산에 대한 공포가 정책으로 번역된 것이 바로 조지 캐넌의 봉쇄정책이었을까? 


참고-

John Lewis Gaddis, "The Cold War, the Long Peace, and the Future". Diplomatic History 16 (2),1992. pp.237-238.


지식인의 임무란 무엇인가? 

움베르토 에코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 바 있다.

현재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서 지식인이 기능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가 하나있다. 무언가 심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아무도 그것을 깨닫지 못할 때이다. 바로 그런 경우에만 지식인의 호소는 경고로서 도움이 될 수 있다. 사실 그런 경우, 호소를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배관공 일을 하더라도) 지식인의 기능을 하게 된다. 물론 누군가 공적 지명도가 있을 경우, 그 호소는 더욱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 처럼) 하지만 그런 것은 무언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아무도 깨닫지 못할 경우에만 의미가 있다. 

1946년 조지 캐넌은 지식인이 무엇을 할수 있는지,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덧글

  • 제트 리 2017/01/11 18:15 # 답글

    의외의 사실 이군요 ... 하기야 폭력을 행사 하는 사람이 공포를 느끼는 것과 같은 맥락 이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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