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모겐소와 핵전쟁 그리고 홀로코스트 Le monde

키신저의 경고...


전후 미국의 유대인 출신의 국제정치 전문가 지식인들에게 핵전쟁에 대한 일종의 시대정신이 존재한 것으로 볼수 있을까?

한스 모겐소와 헨리 키신저는 모두 독일계 유대인 출신으로, 미국으로 이주하여, 전후 국제정치의 중심에 섰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현실주의자로 분류된다. 

그들은 핵전쟁의 위협을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의 반복이라는 개념화를 했다는 점에서 또한 유사했다.

1950년대에 키신저는 소련과의 핵전쟁을 원자핵 융합반응에 의한 홀로코스트로 개념화한 바 있었다.

Niall Ferguson, The Jewish key to Henry Kissinger, May 28, 2008 

핵전쟁의 위협에 대한 한스 모겐소의 인식은 국제정치에 대한 그의 입장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모겐소는 핵무기의 발전이 국제정치의 심각한 질적 혁명을 의미한다고 믿었고, 현실주의 경세술에 대한 모겐소의 총론은 핵전쟁 문제에 적용 불가능하다고 믿었다고 한다. 핵 대결의 맥락에서, 모겐소가 국제정치의 역동성을 설명한 방식으로 개념화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힘이 반대되는 힘에 대해 직접적으로 행사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즉 핵전쟁 앞에서 힘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핵의 재앙을 막기 위해서, 인류는 민족국가의 틀을 초월해야 하고, 새로운 국제질서를 수립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핵전쟁에 대한 모겐소의 심각한 공포와 핵무기 통제를 위한 새로운 국제질서 수립에 대한 그의 호소는 홀로코스트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홀로코스트는 모겐소와 같은 독일의 유대계 지식인들에게 심오한 영향을 주었다.

1961년의 그의 <핵 시대의 죽음>이란 글에서, 모겐소는 핵전쟁으로 인한 대규모 죽음이 무의미하고 주장했다. 그는 이 상황과 역사상 의미가 있는 죽음을 대비시켰다. 역사상 의미있는 죽음이란, "테르모필레  전투에서의 레오니다드의 죽음,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신 것, 예수님의 십자가"라는 것이었다. 반면에, 핵전쟁으로 한 죽음의 무의미성에 대해 한탄했다.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대학살로 600만 유대인의 대학살을 당했는데, 핵전쟁을 통해서 5천만 명의 미국인과 이와 비슷한 수의 러시아인들이 사망할 것으로 보인다."

홀로코스트에서의 600만 유대인의 죽음과 다가 올 핵전쟁에서의 대량 학살을 등치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케네스 톰슨에 따르면, 핵전쟁에 대한 모겐소의 관심사는 그 발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홀로코스트의 경험과 연결된 것이었다. "홀로코스트에서 600만 명의 유대인이 죽은 마당에, 핵전쟁을 통해 1억 명이 죽는 것도 가능한 것이 아닌가?"


참고- 

Benjamin M. Mollov ,Power and transcendence  Hans J. Morgenthau and the Jewish experience,  Lexington Books (September 2002),pp.110-111.


- 한스 모겐소와 헨리 키신저 같은 유대계 지식인이 미국 전략공군사령관 토마스 파워의 다음 발언을 접하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자제라고? 왜 당신은 놈들의 목숨을 살리는데 그렇게 관심이 많은가? 전체적 생각은 나쁜 놈들을 죽이자는 것이다. 전쟁의 끝에, 미국인이 2명 남았는데, 러시아인은 한 명 남으면, 우리가 이긴 것이다."

- 토마스 파워

미국 전략공군 사령관



덧글

  • Merkyzedek 2017/01/02 13:57 # 답글

    저런 전쟁으로 인류가 격감한다면, 결국 인류라는 종으로서는 스스로에게 패배한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 파리13구 2017/01/02 14:12 #

    Merkyzedek 님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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