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발발에 대한 영국정부의 입장은? Le monde

"영국이 한국전쟁에서 얻은 교훈은?"


영국 정부와 한국전쟁 발발...
- "멀지만, 그래도 의무이다."

영국 정부는 처음에 개입을 주저했고, 워싱턴의 주장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영국 런던- 가디언 보도
2010년 6월 25일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이틀 후, 영국 정부는 각료 회의를 소집했다. 한국은 4번째 안건이었다. 영국 클레멘트 애틀리 정부의 모든 장관들이 한국이 어디있는지 아는 것이 아니었다. 한 고위 관료가 한국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다고 설명했다.

회의의 끝무렵, 노먼 브룩 경이 애틀리 총리에게, "한국은 오히려 먼 의무입니다, 총리님" 애틀리는 "멀죠, 그래요, 하지만, 그럼에도 의무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영국의 한국전쟁 참전을 공식적으로 기록한 것은 앤서니 파라-호클리 Anthony Farrar-Hockley 장군이었다. 그는 1951년 4월, 임진강 전투에서 중공군에 포위당해, 포로가 되었다.  

영국은 원래 한국전쟁 개입에 주저했다. 처음부터 워싱턴 쪽 주장에 대해 근심을 가졌다. 하지만, 영국은 한국을 돕자는 유엔안보리 결의안에 동의했다. 영국은 "중앙에서 지도되는 공산주의 제국주의"라는 워싱턴의 표현에 우려를 표명했다. 이는 모택동을 소련의 도구로 간주한 것이었다. 런던은 모택동을 공산주의자라기 보다는 민족주의자로 간주했다. 특히 애틀리 정부는 유엔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에 대해 특히 우려했다.

영국 정부는 중국에 대한 맥아더의 공격적인 수사에 대해 경각심을 가졌다. 더우기, 1950년 11월 트루먼은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군사적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 발언했다. 즉 미국이 가진 모든 무기를 사용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트루먼은 미국이 핵무기로 극동의 소련 기지를 공격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소련이 서유럽의 미군 기지를 위협한다면, 트루먼은 영국의 미군 기지에 핵무기를 탑재한 전략 폭격기를 배치할 것이라 것이었다. 애틀리가 마지못해 동의했지만, 영국 의회에는 말하지 않았다. 미국의 의도와 맥아더의 행동에 근심을 가진 애틀리는 그 해 12월 트루먼과 회담하기 위해서 워싱턴을 방문했다. 트루먼은 애틀리에게 영국의 동의 없이 원폭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 약속했다. 하지만 트루먼을 이 약속을 문서로 만들어 주는 것은 거절했다. 결국 트루먼은 1951년에 한국에서의 전쟁전략에 대한 불화로 맥아더를 해임시키게 되었다. 

파라-호클리는 "원폭은 영국의 사전협의 없이 한국에서 사용될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고 적었다. 만약 미국이 원폭을 사용했다면, 워싱턴과 런던 뿐만아니라, 서유럽과 미국의 관계가 끝장날 수도 있었다. 

전쟁 이후로, 영국 주둔 미국 핵전략 폭격기가 계속 문제가 되었고, 영국이 사용에 대한 거부권을 가지고 있는지가 정치적 쟁점으로 계속 제기되었다.



덧글

  • 푸른별출장자 2016/12/17 00:51 # 답글

    영국이야말로 균형자 역할에 목숨을 걸었죠.

    독-프-러-스페인 어느 쪽도 유럽 맹주가 안되도록 한 그 수많았던 전쟁도 그런 전략이었고

    그래서 노동당 정부가 소비에트에 제트 엔진을 준 것이 공산주의에 대한 우호의 표시가 아니라 미국 물먹이는 균형자 놀이가 아니었냐는 의심도 받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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