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의사결정 과정... Le monde

최순실의 힘? ^^


지난 10월 31일 기사에서 김종인은 박근혜에 대해서 다음을 증언했다.

동아일보- 무슨 뜻인가. 최순실을 본 적은 있나.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와 둘이 만나 뭔가를 합의하고 나면 오후 11시쯤 전화를 걸어와 ‘좀 생각해 보겠다’며 원점으로 돌리곤 했다. 몇 번 그런 적이 있어 한동안 의아했다. ‘저 사람이 자기 스스로 판단을 못 하는 거 아닌가’ ‘밖에서 누가 조종하는 사람이 있지 않나’라고 생각했는데 확인할 길이 없었다. 안종범이니 강석훈 같은 사람들을 의심하기도 했는데 그들도 하수인 역할만 한 것 같다. 이번에 보니 이 사람들이 그랬구나 싶었다. 내가 갖고 있던 수수께끼가 풀렸다.”

10월 29일에 전여옥도 조선일보에 유사한 증언을 했다.

조선- 우리는 최순실씨를 대통령으로 모셨던 건가.

"(한숨 쉬며) 2006년인가.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세종시 수도 이전 문제를 국회에서 강행 처리하려고 했다. 열린우리당이 국회 문을 닫아걸고 있으니까 (박근혜) 대표가 얼굴이 파래져 있었다. 한마디로 결정을 못 하는 거다. 하도 어쩔 줄 몰라 하길래 '전화라도 해 보세요'라고 했다. 늘 결정 못 할 때는 어딘가에 전화를 했으니까. 그랬더니 정말 저쪽으로 가서 조용히 전화를 했다. 힘이 쫙 빠지더라."

조선-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도 고쳤다는데, 그때는 어땠나.

"(가방 만들었다는) 고영태가 회장(최순실) 취미는 대통령 연설문 고치는 거라 말했을 때 모두 웃었지 않나? 대통령 비서실장은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했고. 하지만 나는 웃지 않았다. 당시에도 그랬으니까. 원고가 '걸레'가 되어 돌아왔다."


한때 박근혜를 측근에서 보좌했던 김종인과 전여옥에 따르면,

중요한 의사결정의 갈림길에서 그것이 누구인지 어느정도 윤곽이 드러났지만,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그녀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대통령 본인의 결단에 의하기 보다는, 다른 누군가에게 의존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의 김순덕에 따르면, 그 누군가란, "제정 러시아의 요승(妖僧) 라스푸틴에 비견되는 최태민의 딸이자 호스트바 마담 출신 남자와 반말하는 강남 여편네"이다.


이렇게 박근혜가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그 강남 여편네"의 조언에 의존했다면, 

다른 의사결정에서는 어땠을까?

2015년 1월 22일, 조선일보 양상훈은 대통령 弔花에 대한 믿기 힘든 얘기 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서

자신의 한계 인정 않고 지금처럼 다 챙기려 들면 최악의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다 챙기려 드는 대통령의 사례로 다음을 들었다. 상가집에 조화를 보내는 것도 대통령 결정 사항인 현실을 비판한 것이었다.

"박 대통령이 모든 것을 자신이 다 챙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다. 고위 공직을 지낸 분이 상(喪)을 당했는데 그 상가에 당연히 있을 법한 대통령 조화가 없었다고 한다. 대통령과의 관계도 특별한 사람이었다. 청와대가 모르는 줄 알고 몇 사람이 청와대에 알렸다. 금방 올 것 같았던 조화는 늦어도 너무 늦게 왔다.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이 사정을 알아보았다. "조화를 보내려면 대통령 허락을 받아야 하는 모양"이라는 게 그들의 결론이었다. 이 말이 믿기지 않았는데 얼마 후에 비슷한 얘기를 또 듣게 됐다. 상을 당한 다른 사람에게 관련 분야 청와대 수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수석은 "대통령님 조화를 보내겠다"고 했다. 조화는 끝내 오지 않았다. 궁금했던 상주(喪主)가 나중에 수석에게 물었더니 "조화는 수석 결정 사항이 아니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조화 보내는 것도 대통령 결재를 받아야 하는 게 사실이라면 다른 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일반적 관점에서, 문제는 무엇인가?

가령, 헨리 키신저에 따르면, 정치가와 관료는 다르며, 심지어 상호 대립적인 존재이다. 정치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은 관료와는 다른 존재이며, 관료주의에 대립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정치가가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대한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면, 관료가 해야 할 것은 조화를 보낼 것인지와 같은 사소한 결정을 내리고 집행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박근혜의 문제란 무엇인가?

박 대통령은 관료가 해야할 자질구레한 일을 자신이 몸소 결정했지만, 정작 정치가가 반드시 해야하는 중요한 의사결정을 "강남 여편네"에게 의존했다는 것이다.


물론 정통 엘리트 관료의 입장에서 보면, 무개념의 박근혜는 어쩌면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비록 상관과 부하의 관계였지만, 상관이 관련 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이 없으면, 엘리트 출신의 관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관의 의존도를 고려해서, 관료가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상관은 사소한 결정에 대해 집착하거나, 아니면 관료가 제시한 방안에 대해 도장만 찍어주는 거수기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 꼭두각시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관료의 노리개가 되지 않기 위한 박근혜의 선택은 무엇이었나? 샤머니즘에 대한 의존인가? 관료 정치의 극복을 위한 대안이 샤머니즘이란 말인가? 

이 정도 수준의 대통령과 관료의 관계상의 문제는 미국 정치에서도 발생하지만,

대통령이 의사결정에서, 라스푸틴의 딸인 "강남 여편네"의 샤머니즘적 직관의 도움을 받은 것을 보면, 관료의 꼭두각시로 전락하는 대통령의 문제 수준을 박근혜 대통령이 단번에 뛰어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치적 의사결정과 샤머니즘의 분리,결별은 과연 어느시대의 정치 구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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