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붉은 군대의 역설...ㅠ Le monde

<프라하의 봄>

냉전 초기 미소간의 전략적 균형의 본질은 다음과 같았다.  미국은 소련에 대한 재래식 지상 무력의 열세를 미국의 핵 전략무력의 우위로 만회했다는 것이다.

키신저의 회고록에 따르면, 전후 소련은 육군력에서 막강한 우위를 점했다. 그런 가운데 소련 군사력의 약점은 두가지였다. 소련군의 작전 범위가 비교적 좁았다는 것이 하나요, 미국이 핵 전략무력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했다는 것이 다른 하나였다. 소련은 미국의 핵 우위가 유발하는 공포때문에 육군력의 우위를 국지적 이익으로 전환시키지 못했다. 

따라서 이것이 바로 소련이 거대한 재래식 무력을 미국의 동맹국들을 상대로 결코 사용하지 못했던 이유였다. 1945년 이래 (닉슨 집권기까지)) 역설들 중 하나는 붉은 군대가 소련의 동맹국들을 공격하는데만 동원되었다는 것이다. 1953년의 동독. 1956년의 헝가리, 1968년의 체코슬로바키아, 그리고 1969년 중국 국경.


출처-

Kissinger, White House Years. 1st ed. Boston: Little, Brown, 1979. p.196.


소련 붉은 군대는 자본주의 제국주의 세력으로부터 억압받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구원한다는 해방의 혁명적 무력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무력이 동원된 것은 미국의 동맹국이 아닌, 소련의 동맹국 시민들을 무력으로 제압하기 위해서였다.



덧글

  • 잠꾸러기 2016/10/05 13:31 # 답글

    생각지도 못한 역설ㅋ
  • 파리13구 2016/10/05 14:20 #

    ^^
  • Mavs 2016/10/05 17:31 # 삭제 답글

    미국 역시 핵무기의 우위를 국지적 이익으로 전환시키지 못했다고 봅니다. 한국전쟁만 하더라도 재래식 전력의 부족 때문에 계속 빌빌거려야 했으니까요. 더구나 이렇게 전력에 부족했던 이유가 핵에 의존하느라 재래식 무기를 대거 퇴역시켰기 때문이었죠.
  • 파리13구 2016/10/05 17:56 #

    핵이란 무력을 협상력으로 바꾸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였습니다.
  • 무지개빛 미카 2016/10/05 20:49 # 답글

    그래서 두 집단이 생각한 결론은 대리전이었답니다. 그리고 그 대리전에 자신들의 무기를 막 팔았고, 막 대주고, 막 쏘았죠.

    4차 중동전, 욤 키로프 전쟁이 딱 좋은 사례였습니다. 새거 대전차 미사일로 M60,M48을 마구 때려잡는 이집트군, 센츄리온 개조전차와 미국이 지원한 각종 위성 지역정보와 나토군 장비로 무장하여 시리아로 진격한 이스라엘군.....
  • 포스21 2016/10/05 23:04 # 답글

    사실은 비슷한 관점에서 북한의 핵또한 진정한 용도는 자국의 민주화 요구가 닥쳤을 때 그걸 억누르기 위한 수단으로서 확보하려는 것 또한 한가지 중요한 목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 나인테일 2016/10/06 06:08 # 답글

    체첸 전쟁에서 보여줬던 추태를 보면 과연 소련이 막강한 육군력을 가지기는 했는지 의심스럽죠.
  • 키키 2016/10/06 08:50 # 답글

    무릎을 손바닥으로 치게 되는 부분!
  • 파리13구 2016/10/06 08:54 #

    동유럽에서 소련군은 ..ㅠㅠ
  • 진보만세 2016/10/06 15:01 # 답글

    드골이 '소련'이라는 명칭을 한사코 거부하고, 늘상 '러시아'로 지칭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동유럽 침공-개입 사태의 전말을 보면 확실히 혜안력 있는 인물이었던 듯..
  • 파리13구 2016/10/06 15:03 #

    그래서 프랑스 공화주의자들은 외칩니다.

    드골 장군 만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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