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키디데스를 알면 힐러리-트럼프 TV토론이 보인다? Le monde

트럼프,"테러범을 고문하지 않겠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미국 대선을 이해하는데 어떤 도움을 제공할 수 있을까?

로버트 자레트스키는 포린 폴리시 기고문을 통해서, 힐러리와 트럼프 논쟁은 기원전 428년 아테네에서의 미틸레네 논쟁을 연상시킨다고 적었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따르면, 미틸레네 논쟁의 배경은 다음과 같았다. 장준호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장준호,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재구성 - 외교논쟁과 그 현대적 함의,2007] 


기원전 428년 전쟁이 시작된지 5년째 되는 해에 아테네로부터 이반한 레스보스 섬의 미틸레네를 처벌하는 문제를 두고 아테네의 민회에서 클레온과 디오도토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이 양자 논쟁은 아테네가 헬라스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외교안보정책의 두 가지 옵션인 처벌을 통한 위협효과전략과 용서를 통한 협력유발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10) 강경파였던 클레온은 처벌을 통한 위협효과전략이 아테네의 이익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클레온 : 1) 저는 미틸레네가 가장 큰 재난을 여러분에게 가져왔다는 것을 밝히고자 합니다. 2》 그들은 주권을 보유하고 있고, 여러분들로부터 다른 누구보다 깊은 배려를 받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불구대천의 적에 가담해 우리의 파멸을 도모했습니다. 3) 그들에게 그에 상용한 벌을 내려 다른 동맹국에 확실한 본보기로 삼고, 모반을 일으키면 죽음으로 보복당한다는 예를 분명히 보여주어야 합니다. 4) 이로 인해 여러분은 자신이 힘들여 구축한 동맹도시를 관리하기 위한 투쟁에 에너지를 낭비함으로써 본래의 외적과의 투쟁을 소홀히 하게 되 는 일이 적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P-T, 3-37-40),

페리클레스가 사망하기 전에 통찰한 것처럼 아테네인에게 있어 이 전쟁의 핵심 사안은 지배권의 유지였다. 미틸레네가 아테네 동맹에서 이탈하여 펠로폰네소스 동맹쪽으로 자신의 위치를 이동했다는 것은 아테네의 지배권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클레온과 다오도토스의 양자 논쟁은 아테네의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한 외교정책 논의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클레온은 미틸레네를 강력하게 처벌하여 다른 동행국에 본보기로 삼아야 아태네의 지배권이 유지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디오도토스는 클레온의 주장과는 다르게 용서를 통해 동맹국의 협력을 유발 해야 아테네의 지배권이 유지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디오도토스 1) 제는 미틸레네를 지지하거나 비난하기 위해 등단한 것은 아납니다, 우리가 현명하다면 문제의 핵심을 다른 차원에서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미텔레네인이 우리에게 부정한 짓을 저질렀다는 점 보다는 우리의 이익과 관련된 점을 깊이 숙고해야 합니다. 2) 우리는 현재보다 장래의 일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의 주장은 미래에 아테네에 대항하여 일어날 수 있는 모반의 수를 줄이기 위해 강력한 처벌을 통해 장래 이익을 꾀하자고 주장하는 클레온의 입장과 다르지 않습니다. 저도 장래의 유리한 계책을 세우는 데는 찬성합니다. 그러나 제의 결론은 그의 결론과 정반대입니다. 3) 모반을 일으킨 자를 이젠 마음을 바꿀 길도, 그 잘못을 빨리 보상할 길도 막혀버린 그런 절망감 속으로 몰아 넣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반을 일으킨 도시가 그 모반의 시도를 뉘우치고 실패를 깨달으면 그들에게 아직 남은 재력을 인도하고 그 뒤에는 공납금 을 낸다는 조건으로 교섭에 동의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 공납금이야말로 적에 대항할 수 있는 우리 힘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4) 미틸레네 인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앞으로 적이 아닌 우리의 유일한 동맹자가 될 수 있도록 우리는 그들이 부정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던 것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지배권 유지에 훨씬 더 유약하고 적에게는 가장 두려운 정책이 될 것입니다(P-T, 3-41-48).

클레온과 다오도토스는 아테네의 지배권 유지를 위한 상이한 수단을 제시한다. 클레온은 처벌과 위협의 수단을, 다오도토스는 용서와 도덕의 수단을 주장하고 있다. 용서는 강자인 아테네인이 유연성과 도덕성을 발휘하는 것을 의미한다. 용서의 전략은 다른 동맹국들에게 힘이 있으면서도 그 사용을 자제할 수 있다는 제국의 도덕성을 인식시키며 미틸레네의 공납금이라는 이익도 가져다준다. 아테네의 민회가 힘에 의한 처벌보다는 도덕성을 보여줌으로써 제국의 지배권을 유지할 수 있다고 연설한 디오도토스를 지지했다(P-T, 3-49)는 것은 전쟁 5년째인 기원전 427년까지 아테네인의 현실적 이성이 작동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로버트 자레트스키는 다음을 지적했다.

기원전 428년, 아테네는 절망상태였다. 전쟁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아테네의 강력한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폴리스를 강타한 역병으로 인해 사망했다. 그리고 아테네가 주도하는 델로스 동맹 소속의 미틸레네가 스타르타 진영에게 넘어갔다. 미틸레네의 배신에 분노한 아테네인은 민회의 투표를 통해서 모든 미틸레에 성인 남자들을 죽이고,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로 만들자고 결정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테네의 결정을 집행하기 위한 배가 출발했고, 학살이란 비극을 두려워했던 몇몇 아테네인들이 이 결정의 번복을 위해 노력했다.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바로 미틸레네 논쟁이었다. 우선 클레온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 클레온은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았은 상인 출신의 야심가였다. 투키디데스는 클레온을 호전적인 어릿광대로 묘사했다. 클레온은 민중을 선동하는데 능했다. 클레온은 "제국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신민을 다스리는 참주와 같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테네의 안전이 정의에 우선한다고 강조했다. 클레온은 미틸레네에 대한 본보기식 처벌이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반박한 것이 디오도토스였다. 디오도토스는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잔인한 현실주의가 필요하다는 클레온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렇다고 이상주의를 주장한 것도 아니었다. 디오도토스에 따르면, 쟁점은 올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었다. 대신에, 아테네 민회는 이 결정이 아테네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틸레네의 경우, 최선의 선택은 없고, 차악 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테네의 국익은 미틸레네인에 대한 자비를 보일때 가장 잘 실현된다는 주장이었고, 이는 아테네인이 착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실용주의자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자비의 과시야 말로, 미래의 아테네에 대항하는 모반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 디오도토스의 주장이었다.

디오도토스에 설득당한 아테네 민회는 결정 번복 사실을 전달하기 위한 연락선을 급히 보냈다. 다행히도, 첫번째가 배가 학살 명령을 집행하기 전에 연락선이 도착해서. 학살이라는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 

로버트 자레트스키에 따르면, 클레온과 디오도토스의 논쟁은 아테네가 페리클레스의 자유주의적 이상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위험한 징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유명한 장례식 추도연설에서, 페리클레스는 모든 아테네인들이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지켜야 할 이상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아테네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아테네가 무엇이 되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도 멋진 수사를 통해 주장했다. 아테네는 개방성,관용, 평등의 이상,균형감을 통해서 위대한 도시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가 모든 그리스를 위한 모범(교육)이 되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펠레폰네소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아테네는 이상에서 점점 멀어졌고, 이상을 대체한 것은 바로 잔인한 폭력이었다. 그것을 보여준 것이 바로 416년의 멜로스 학살이었다. 비극은 아테네가 중립국 멜로스를 공략하는 과정에서 진행되었다. 공격에 앞서, 아테네는 멜로스인들에게 항복이냐 전멸이냐 중에서 선택하라고 강요했다. 멜로스측의 아테네의 주장의 부당함에 항의하자, 아테네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 "강자는 그들의 할 수 있는 힘으로 하며, 약자는 그들이 받아야 들여야 할 일을 받아 들인다." 결국 멜로스는 항복을 거부했다. 이에 아테네는 멜로스를 정복했고, 그 결과 멜로스의 모든 남성들이 처형당하고,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로 팔렸다.
   
적어도 미틸레네 논쟁까지 아테네는 자신의 입장을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수 있었다. 즉, 정의가 아테네의 힘이었다. 하지만, 멜로스 학살 이후, "힘이 곧 정의이다."가 아테네 제국의 통치 원리가 되었다. 그리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교훈이란, 힘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제국의 운명은 몰락임을 보여준다. "힘이 정의이다"는 아테네의 오만이었고, 인간의 오만은 신의 징벌 대상이 된다. 아테네의 오만에 대한 신의 징벌의 구현이 바로 시켈리아 원정이었고,  그 원정에서의 패배로 아테네는 제국의 몰락이라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렇다면, 미틸레네 논쟁이 현재의 미국 정치, 특히 힐러리,트럼프 논쟁을 이해하는데 어떤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것인가? 클레온과 디오도토스 논쟁과 힐러리-트럼프 토론간에는 어떤 역사적 유추가 가능할까? 오늘날 누가 미국의 클레온인가? 누가 데마고그적 수사를 이용, 민중을 선동하여, 국가를 위험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인가?

트럼프가 2천여년 만에 부활한 클레온이라면, 힐러리 클린턴은 치마입은 디오도토스 인가? 이란 핵협상에 대한 트럼프의 비판에 대해서 클린턴은 협상이 위협을 억제하는데 성공했다고 논박했다. 하지만 클린턴의 자질은 디오도토스 수준에는 도달하지만, 여전히 페리클레스적인 영웅적 면모에 도달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로버트 자레트스키의 지적이다.

자레트스키에 따르면, 디오도토스와 힐러리 정치언어의 한계는 실용적인 단기적 이익만을 강조할 뿐이지, 가치있는 미래지향적 이상을 향해서 국가를 이끌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페리클레스적 영웅적 자질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투키디데스는 당대의 독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원한 교훈"을 제공할 목적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썼다. 그 교훈은 이번 미국 대선에서도 적용가능할 수 있다. 그 교훈이란, 클레온적인 트럼프라는 도전에 제대로 맞서기 위해서, 미국 민주당과 나머지 세계에 필요한 것은 디오도토스적인 실용주의가 아니라, 페리클레스의 장례식 연설에서 보이는 어떤 영웅적 수사란 것이다. 만약 힐러리가 트럼프의 데마고기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이번 미국 대선은 미국 민주주의의 장례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투키디데스의 시대의 미틸레네 논쟁에서 디오도토스가 클레온에게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테네는 결국 망했다. 현재도 마찬가지가 될까? 1차 tv토론에서 클린턴이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비극이 재현될까?



덧글

  • 똑같음 2016/09/30 07:30 # 삭제 답글

    국민들의 지지(라고 적고 선거자금 모아서 선거하는) 미국 정치인들이
    무슨 실제적 힘이 있겠습니까?


    지금 미국은 클린턴과 트럼프가 분열된게 아니라 미국민들의 시각 자체가 분열된거죠.


    정치인들이라면 이걸 중재하고 화합하도록 노력해야 이상적인데
    실제로는 갈등을 더 부추키고 있으니 결국 3류들인건 똑같음.

    또한 그럼으로 인해 미국의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으니 점점 트럼프 같은 극우 경향이
    강화되겠죠. 이번 대통령이 아니면 다음 대통령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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