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슬레이의 최후... Le monde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

키신저에 따르면, 메테르니히와 더불어 빈회의에서 100년간의 유럽의 평화체제 구축을 주도했던 영국의 캐슬레이는 자신의 신념과 영국의 국내적 필요간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가졌다. 

이러한 극복불가능한 상황에서, 그는 어떤 출구도 찾지 못했다. 캐슬레이는 왕을 알현한 마지막 자리에서, "폐하, 유럽에 작별을 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폐하와 저만이 유럽을 알았고, 유럽을 구했습니다. 소인 이후의 어느 누구도 대륙의 문제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4일 이후, 그는 자살했다.

Kissinger, Diplomacy ( New York: Simon & Schuster, 1994),p.91.


- 브렉시트는 캐슬레이의 저주인가? ㅠㅠ

정치가의 신념이 모국의 전통과 충돌할 때, 자살하지 않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몇몇 연구자들은 키신저의 진정한 영웅은 메테르니히가 아니라 캐슬레이였다고 주장한다.



덧글

  • 소노라 2016/09/17 18:14 # 삭제 답글

    Diplomacy에서 인용하신, 영국에서 점점 고립되어 가던 런던데리 후작의 최후를 다룬 부분은 제가 회복된 세계(A World Restored)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부분 중 하나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오늘날 영국의 국력이 국제정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균형자로 위치하던 과거와 비교할 때 더 낮아지면 낮아졌지 높아지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예전과 같은 영광의 고립으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단 브렉시트는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영국이 어떤 방식으로 이 난국을 헤쳐나갈 지가 궁금하군요.
  • 파리13구 2016/09/17 19:31 #

    캐슬레이의 위대함은 국내여론과 역사의 방향이 충돌할때, 후자를 선택하는 용기를 보여주었다는데 있습니다.

    다만, 여론이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는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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