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아메리카에서 프랑스를 어떻게 몰아냈는가? Le monde

미국은 제국인가, 패권국인가?

키신저에 따르면, 1823년의 먼로 독트린은 대서양을 미국과 유럽을 분리시키는 해자 垓字 로 만든 것이었다. 즉 먼로 독트린은 유럽이 아메리카 문제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1863년 프랑스 나폴레옹3세의 멕시코 무력 개입은 미국의 남북전쟁이라는 혼란을 틈탄 유럽제국의 도발이었다. 그리고 먼로 독트린에 대한 정면 도전에 직면한 미국은 프랑스 제국의 도발에 대해서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페터 벤더에 따르면 다음과 같았다.

<남북전쟁>
1863년에 이르자 대륙을 유럽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미국이 다시 한번 나서야 할 상황이 벌어졌다. 프랑스가 중앙아메리카에서 정치적,경제적으로는 물론 군사적으로 기반을 세우려 했 던 것이다. 모험을 좋아하는 황제 나폴레옹 3세가 멕시코의 베니토 후아레스 대통령을 몰아내고는 합스부르크가의 막 시밀리안 왕자를 멕시코의 황제로 세웠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미국을 4중으로 자극했다. 우선 그는 미국과 이웃한 국가로서 미국의 관심 지역이었던 나라를 점령했다. 또한 유럽 강대국으로서 그러한 일을 했으므로 먼로선언에 대한 공격이기 도 했다. 게다가 봉건군주로서 그 일을 했으므로 ‘유럽의 정부 체제’를 다시 ‘이 진영’에 도입하는 것은 ‘평화에 대한 위협’이라고 천명한 먼로독트린을 다시 한번 침해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점령 시점이 문제가 되었다. 나폴레옹이 멕시코를 점령한 시기는 미국이 남북전쟁을 수행하던 때였는데, 분리된 남부에서는 프랑스와의 정치적 거래를 희망했다. 즉 막시밀리안을 멕시코 황제로 인정하는 대신에 남부 주들의 주도권을 인정 해 주길 바랐던 것이다. 

그리하여 북부는 프랑스의 멕시코 침공 에 의해 이중으로 골치를 앓게 되었다. 군사적으로는 남북전쟁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치적으로는 나폴레옹을 남부 분리주의자들과 떼어 놓기 위해 애써야 했던 것이다... 

미국 북부의 주들은 그 상황에서 홀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1864년 4월에 이미 하원에서는 프랑스의 위성정부에 대한 성명을 가결했으나 그들은 남북전쟁의 승리가 분명해질 때까지 자제 하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승리를 쟁취하자 더 이상은 유보할 필요가 없었다. 남북전쟁의 영웅인 그랜트 장군과 셔먼 장군은 곧바로 남쪽으로 계속 진군할 것을 제안했고. 이 지원병들은 후아레스의 유격대원들과 합류했다. 정부에서는 정치적으로 활동에 들어갔다. 먼로선언을 끌어들이지는 않았지만 아메리카 대륙에 프랑스 군대가 있는 것은 미국의 정치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1866년 2월에 수워드 seward 국무장관은 거의 최후통첩 형식으로 프랑스가 언제 철수할 것인지 확실히 하라고 요구했다...

결국 나폴레옹 3세가 무릎을 꿇었다. 2월 말에 파리의 황제는 멕시코에 세운 황제를 그대로 앉혀둔 채 군대를 소환을 준비가 되었다고 선언했다.


페터 벤더, 제국의 부활, 이끌리오,2006.p.45.



덧글

  • 파파라치 2016/08/08 08:11 # 답글

    막시밀리안 지못미... ㅠㅠ
  • 파리13구 2016/08/08 08:15 #

    포로가 되어 처형당합니다.ㅠ
  • 파파라치 2016/08/08 08:40 #

    처형 장면을 그린 마네의 그림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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