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하우스호퍼, 일본의 한국 지배에 대해서... Le monde

1882년의 조미수호통상조약의 문제...


카를 하우스호퍼는 독일 지정학자로 히틀러를 위해 독일 제3제국 건설의 이론을 제공했다.

1908년에서 1910년 일본 주재 독일 대사관의 무관으로 근무하였다. 1911년부터 1913년까지 논문「일본의 군사력, 세계에서의 지위, 장래에 대한 고찰」로 Doktor der Philosophie(박사에 해당)을 취득하였다. 

1909년 가을, 하우스호퍼는 아내와 함께, 조선과 만주를 여행하기도 했다.

하우스호퍼는 일본에 대해 다음을 주장했다.

일본은 세계에 전쟁의 진정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전쟁이 한 민족의 활력을 놀랄정도 증가시켰다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일본은 강력한 새 지위를 획득, 새로운 성장과 발전의 동력을 얻었고, 새 영토를 획득했으며, 민족적 활력 상승을 위한 자양분을 제공받았다는 것이다. 단지 전쟁만이 한 민족에게 활력을 제공할 수 있다. 일본이 다음을 보여주었다 : "세상의 법칙은 끝없는 투쟁이지, 정체가 아니다." 전쟁은 거친 현실이며, 이타주의의 교육자이다. 국가의 생명 시계는 다음을 가르킨다 : 프랑스는 오후, 영국은 정오, 독일은 오전 11시 그리고 일본은 일출 시간. 

하우스호퍼에 따르면, 일본의 본질은 2000년된 왕실이라는 통일된 군사 지휘력, 사무라이의 전사 윤리, 가족,조국,천황을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된 개인, 자살 숭배, 말레이,몽골,아이누계의 운좋은 혼혈 덕분이라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일본의 높은 인종적 가치를 보여주며, 민족의 활력이라는 것이다. "활력의 가장 거친 시험대가 바로 전쟁이다."

하우스호퍼에게, 전쟁은 1910년의 일본의 한국에 대한 영원한 지배를 의미했다. 대한제국이 일본의 한 지방으로 편입된 것은 모범적인 방식으로 달성되었다. "40만명의 특권적인 놈팡이들이 지배한 1200만명이 박력있는 메이지 일본에게 정복당했다"는 것이다. 그 증거는 한국 민중 뿐만아니라 엘리트들도 병합을 받아들였고, 심지어 "아둔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어떤 조직적 저항도 없었다. "진정한 한국인들은 자유를 위해 싸우거나 죽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말하자면, 한국인들은 더 나은 운명을 누릴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일본의 점령은 훌륭하게 계획되었고, 이는 한국에게 질서와 번영을 주었다. 단지 13000명의 일본 경찰이 한국을 무질서로부터 구해냈다. 그리고 한국에 자금이 몰려들고 있다 ; 35개의 비단 농장, 21개의 비단 생산 훈련학교 , 13개의 비단 짜는 공장, 37개의 연구소, 공장 학교, 8개의 종이 공장이 생겼다. 뿐만아니라, 일본은 도로, 철도를 건설했고, 하천을 정비했고, 진해,인천,남포,부산 같은 항구를 현대화했다. 한국인들은 자신의 운명을 수용했고, 일본어 말하기 쓰기를 배웠다. 가장 잘한 것은 메이지 정부가 앵글로-색슨 선교사들을 추방시켰다는 것이다.

한국이란 변경을 일본이 점령한 것에는 더 심오한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하우스호퍼는 오쿠마 시게노부  大隈重信 를 통해 이를 배웠다.  1910년 전직 총리 시게노부는 한국과 대만이 일본 깃발 아래 본토에 통합될 것이라 기대했고, 대일본제국이 강대국의 반열에 오르게 만들 것이라 했다. 앞으로 두 세대만 지나면, 일본,한국,대만의 인구는 1억 명이 될 것이고, 이는 일본을 세계적 강대국으로 만들 것이다. 

하우스호퍼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한국에서 만주에 이르는 광활한 대지를 동아시아에서의 일본 지도력의 핵심으로 간주했다.   

Holger H. Herwig, The Demon of Geopolitics: How Karl Haushofer "Educated" Hitler and Hess,pp.31-32.




덧글

  • Tretyakov 2016/07/14 19:00 # 삭제 답글

    딱히 새로운 건 아닙니다. 구한 말에 조선에 있었던 이사벨라 버드 비숍도 조선인은 야만적이고 조선 지배층은 막장이어서 일본이 조선인과 충돌할 정도로 자기 과시를 하는 점만 빼면 식민 통치로 조선인들을 문명 사회로 구원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리피스나 카잔차키스나 알렌이나 분쉬 등도 비슷하게 보았어요. 예외는 진짜 한국을 위해 다 바쳤던 헐버트 정도? 그런데 헐버트도 한국 욕했다는 말을 좀 들어서...

    한국이나 중화인민공화국 역사 학계가 지나치게 민족적이어서 대학원 수업이나 학회 논문 빼고는 이런 게 안 알려졌을 뿐입니다. 일본의 진보적 역사가 이에나가 사부로나 미국 대학 교수도 한국이나 중국 교과서는 지나칠 정도로 자국 중심주의가 심하다고 보는 게 한국과 중국 역사교육이지요.
  • KittyHawk 2016/07/14 19:16 #

    아마 헐버트가 그리했던 건 좌옹의 경우처럼 큰 좌절감을 느꼈기 때문 아닌가 싶습니다. 태평양 전쟁 중의 친일 행위를 제외하고 보면 3.1운동 때 잡혀간 시위자와 학생들에게 가혹한 행위를 하지 말 것을 총독부 관리에게 요구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실력양성 운동을 전개하던 그조차도 이 나라는 민중들부터가 가망이 없다는 좌절감 등이 그를 주저앉게 만든 면이 엿보여지거든요.
  • eggry 2016/07/14 19:55 # 답글

    이분 히틀러랑 헤스에게 바람 넣은 것도 모자라 일뽕도 한가닥 했군요. 뭐 당시 군국주의에 전도된 독일인에겐 일본이 아주 교과서적으로 보였겠지만...
  • 파리13구 2016/07/15 04:49 #

    독일-러시아-일본의 동맹을 주장했습니다. ㅠ
  • Mavs 2016/07/14 21:48 # 삭제 답글

    다양한 인종의 혼혈이 민족적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주장을 한 사람이 나치를 위해 일하다니....
  • 파리13구 2016/07/15 04:49 #

    모순입니다.ㅠ
  • 플로리몽 2016/07/15 08:21 # 답글

    뭐 흔한 식민지배의 찬양이지만 눈에 띄는것이라면
    가장 잘한것은 앵글로색슨 선교사들을 추방한 것이다..이 대목이군요.
  • 파리13구 2016/07/15 08:25 #

    그렇습니다...
  • 지나가던 2016/07/15 14:42 # 삭제 답글

    약간 다른얘기지만 강철군화 잭런던의 책에도 일본인은 타고난 용사, 조선인은 아무런 개선의지가 없는 찌질(?)이 비슷하게 본 것 같더군요. 하우스호퍼의 주장에는 지금도 혹할 만한 부분이 있긴 하네요. 물론 전쟁 비당사자의 입장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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