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조선의 개혁과 진보에 대한 연례보고서... Le monde

1882년의 조미수호통상조약의 문제...


1907년부터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개혁과 진보에 대한 연례보고서

 the Annual Report on Reforms and Progress in Korea 를 발간했고, 

1945년 일본제국 몰락까지 계속 발간했다.

1907년판 보고서 편집자들 중 한명은 세이지 히시다 Hishida Seiji 였다. 

히시다는 1905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일본 외무성 관리가 되었다. 그의 지도교수는 존 바셋 무어 John Bassett Moore 로, 무어는 히시다의 박사논문 출간을 제안했다.

그 책은 <<강대국 일본의 국제적 지위>> 1905년 이었다. 
 
Hishida Seiji, The International Position of Japan as a Great Power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05).   

무어로부터 히시다는 이른바 강대국 정치의 주요 개념을 전수받았고, 이토 히로부미를 위해 일했던 히시다와 그의 동료 외무성 관리들은 서양 입맛에 맞는 일본의 한국 지배 담론 개발을 위해 노력했고, 이를 보고서에 반영했다.

일본 정부는 보고서의 복사본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참가국 정부와 영국과 미국의 주요 대학 도서관에 보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의 일본 행정기구는 한국인의 교화를 위한 것이었다. 1907년 보고서는 일본은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라 주장했다 ; "한국 독립의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일본은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한국의 근대 문명의 방법을 채택하기를 설득하고 있다. 

보고서에서 한국의 독립을 운운한 것은, 1905년 을사조약의 다음 문구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는 두 제국을 결합하는 공동의 이익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한국이 실제로 부강해졌다고 인정할 수 있을 때까지, 이 목적을 위해서 아래에 열거한 조목들을 약속해 정한다.

을사조약에 따르면, 일본의 조선 지배 목적은 명목상으로 보면, "한국을 부강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1908년에 배포된 1907년 보고서는 한국이 자치 능력이 없고, 국제사회에서 주체로 참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고종의 헤이그 밀사 파견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보게 만든 것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1905년 을사조약 이후 일본은 한국의 자치 능력이 없고, 한국의 독립을 유지하는 정책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 몇가지 수정이 불가피했다. ...일본은 한국 문제에 개입할 책임이 있고, 일본은 한국에게 자치에 적합함을  입증할 충분한 기회를 주었지만, 일본은 한국이 이를 위해 매우 부적합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결국, 보고서는 일본의 한국 지배는 문명화의 사명을 위한 것이라 주장했던 것이었다. 


참고-

Alexis Dudden, Japan's Colonization of Korea: Discourse and Power (Peoples of Hawai'i, the Pacific, & Asia), University of Hawaii Press (December 2006),pp. 16-17.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