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세계대전, 프랑스 식민지 병사 그리고 시민권... Le monde

미국은 제국인가, 패권국인가?

프랑스 식민지 병사들의 제1차세계대전 참전은 시민권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이었나?


제인 버뱅크, 프레더릭 쿠퍼에 따르면 다음과 같았다.

<제1차 세계대전과 프랑스>

<제1차 세계대전과 프랑스 식민지>
프랑스 식민지에서 동원된 많은 신민들 (아프리카인,인도차이나인,북아프리카인)은 참호에서 싸웠다. 그들 중에서 서아프리카에서 온 병사만 해도 17만 명이었다. 식민지의 민간인 노동자 2〇만여 명은 프랑스에서 노동자들이 전선으로 불려갔을 {프랑스 여성들도 점점 많이 불려갔다) 때 그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프랑스로 이동했다. 일부 군인과 노동자는 식민지 신민들이 평소에 직면하던 최악의 수모를, 이를테면 별도의 사법제도 같은 모욕을 면제받았다. 1차 세계대전은 프랑스 구하기에 진심으로 동참하는 모든 인종과 종교의 사람들을 칭송한 정서적 제국주의에 실체성을 부여했다. 사실 프랑스가 식민지에서 신병을 모집한 방식은 자유로운 선택과는 거리가 먼 여건에서 징집제와 모병제를 혼합한 방식이었다. 전쟁 중에 프랑스령 서아프리카 내지에서는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 이 반란은 징집제로 인해 더욱 악화되었고,진압과정에서 다른 지역들에서 불려온 병력 가운데 많은 수가 인명을 잃었다.

시민권이 없는 식민지 상당수가 프랑스를 위해 싸우다 죽었다. 당시 아프리카인들의 전투 역할에 관한 여러 신화와 반신화가 있었다. 아프리카인 병사들이 다른 병사들과 똑같았다, 그들의 야만성이 한동안 유용했다, 유난히 위험한 상황에서 그들이 총알받이로 쓰였다는 등- 신화였다. 식민지의 전쟁 기여는 제국들에서 통합과 분화 사이의 중대한 긴장을 드러냈다. 그중 세네갈의 사례를 살펴보자.

세네갈의 주도적인 네 도시 (네 코뮌)는 18세기 이래 프랑스의 식민지 였으며,비록 민사 (民事)를 처리할 때 프랑스 민법이 아닌 이슬람법을 적용받기는 했으나 이들 도시의 주민들은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제10 장). 그들이 인종화된 질서에 들어맞지 않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프랑스 무역상, 정착민, 관리들은 이 권리를 자주 공격했다. 그럼에도 네 도시는 파리 입법기구의 의원을 1명 선출할 수 있었고,1914년부터 그 의원은 아프리카계 흑인 블레즈 디아뉴(Blaise Diagne)였다. 디아뉴는 한 가지 거래를 했다. 디아뉴가 세네갈 시민들을 프랑스 정규군에 징집하는 것을 거들고,다른 곳에서 신병 모집을 돕고,발생하는 문제를 가라앉히는 대신,프랑스는 네 코뮌 유권자들의 시민권을 확실히 보장하고, 그들을 다른 시민들처럼 대하기로一신민들 중에서 모집한 2등 병사들처럼 대하는 것이 아니라一했다. 디아뉴는 모병자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고,프랑스는 1916년에 법으로 네 코뮌의 시민 지위를 보장했다. 영국령 인도에서처럼, 식민지 병사들이 참전한 결과 전쟁 막바지에 중대한 의문이 남았다. 통합으로 기울어가는 추세가 계속될까,뒤집어질까? 

제인 버뱅크, 프레더릭 쿠퍼, 세계제국사 고대 로마에서 G2시대까지 제국은 어떻게 세계를 상상해왔는가, 책과함께,2016.pp.561-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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