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샤를 드골은 데탕트의 선구자였다." Le monde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

<키신저, 닉슨 그리고 드골>

키신저 <<외교>>를 보면, 중소 관계에 대한 드골의 선견지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드골은 이미 1960년대초에 소련이 중국과 국경문제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고, 이것이 소련으로 하여금 서양에 대해 유화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게 만든다고 정확하게 읽어냈다.

드골이 이 상황이 프랑스와 소련간의 데탕트의 조건이 된다고 믿었다.

모스크바의 중국 문제를 고려하여, 모스크바와 파리를 철의 장막을 넘어서는 협상을 진행했고, 이는 드골의 개념, 즉 '대서양에서 우랄 산맥에 이르는 유럽'이라는 비전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드골의 프랑스는 데탕트라는 외교 혁명을 하기에는 힘이 너무 약했다. 모스크바는 파리를 데탕트를 위한 동등한 동반자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드골의 국제정세 분석은 선명지명이었다. 

특히 미국의 정책결정자의 그것과 비교할 때 그랬다. 그들은 이데올로기적 편견에 사로잡혀, 중소분쟁이 서양에게 전략적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간파하지 못했다.


-참고

Kissinger, Diplomacy ( New York: Simon & Schuster, 1994),p.720


드골 사상을 미국에서 실현한 것이 바로 리처드 닉슨과 본인이었다는 것이 키신저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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