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전쟁의 천재들의 한계는 무엇인가?" Le monde

미국 정책 담당자가 전쟁을 기획할때 무엇을 고려할까?

독일은 왜 전쟁의 천재들을 가졌음에도 불하고,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을까? 슐리펜,구데리안,롬멜 등등...

전쟁의 천재들을 가지고 전쟁에서 이기지 못한다!

데니스 쇼월터에 따르면, 20세기 전반의 전쟁사에서 독일이 준 교훈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독일은 기라성같은 전쟁의 천재들을 배출했다. 그들이 전쟁을 기획하고 수행하는 능력은 탁월함 그 자체였다.

전장을 지배하는 이러한 천재들의 대활약에도 불구하고,결국 독일이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전쟁에서 치욕적 패배를 당한 것을 우리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대전략 grand strategy 의 부재로 설명 가능하다. 

쇼월터에 따르면, 독일의 전략 사상은 햐향적으로 발전했으며, 전술, 작전 수준에서 발전했지만, 대전략이라는 부르는 높은 수준의 전략으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투를 이기는데 능했지만, 이 전투의 승리가 전쟁의 승리로 연결되기 위한 전략이 부재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독일이 주는 교훈이란 독일군이 전장의 작전,전술이란 부분에서는 매우 효율적이었지만, 전쟁에서 승리를 위한 전략을 발전시키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작은 전투들에서의 승리만으로는 전쟁에서의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국가는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 높은 수준의 대전략을 가지고 이를 발전시켜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의 전쟁의 천재들은 낮은 수준의 전술 개발에만 매진한 나머지, 높은 수준의 대전략 개발을 등한시 했다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독일의 전쟁 패배로 귀결되었다는 것이 쇼월터의 주장이다.


출처-

William C. Martel, Grand Strategy in Theory and Practice: The Need for an Effective American Foreign Policy, Cambridge University Press (January 12, 2015),pp.43-44.


현대의 전쟁은 장군들의 머리만 가지고 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의 머리도 모두 동원되야 한다.



덧글

  • 레이오트 2016/05/28 16:17 # 답글

    1. 역사적으로 독일은 국가 자체 역량이 주변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데다가 지리적 역학관계상 전쟁이 나면 기본이 양면전선이라서 병력과 장비의 양적 한계를 극한까지 갈고 닦은 작전술로 보완한 측면이 강하지요.

    2. 이런 미시적인 작전술에 대한 집착은 독일군 무기체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가장 극적인 예 중 하나가 제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도 독일군은 제대로 된 전략폭격기 개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지요.

    3. 아프리카 전선에서의 롬멜은 엄격하게 보면 명령 위반을 한 것입니다. 그 때 롬멜의 독일군에게 주어진 명령은 이탈리아군이 무책임하고 충동적으로 벌인 전선의 붕괴 방지였습니다.

    4. 이런 문제와 별개로 연합군은 독일군 상대로 정말 고전하다 못해 결국 캡틴 아메리카를 투입해야 할 정도였지요. 이걸 보고 태평양 전쟁도 만만치 않았다고 하지만 이건 전장 환경 자체가 인간에게 극히 적대적이었는데다가 당시 일본군은 (구시대적인 군사교리는 둘째치고서라도) 집단적 광기를 기초로 한 자살적인, 다르게 말해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오크 군대처럼 행동하고 싸웠기 때문입니다.
  • 파리13구 2016/05/28 14:37 #

    감사합니다. ^^
  • 진보메이슨클랜 2016/05/31 23:16 #

    30년대 독일이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어떤면에서 역량이 딸린다고 볼수 있을까요?
    식민지 영토넓이나 국민들의 정치적 민도 제외하면 그렇게 뒤떨어지는게 있어보이진 않아서요
  • eggry 2016/05/28 14:36 # 답글

    클레망소 옹의 명언이 다시 생각나네요.
  • 파리13구 2016/05/28 14:37 #

    그렇습니다...ㅠㅠ
  • ....... 2016/05/28 14:48 # 삭제 답글

    뭐 관련분야 학자의 주장이니 그러려니 하는데.
    독일의 대전략을 책임진 사람이 히틀러라는 점을 너무 무시한 주장으로 보입니다.
    낫질작전의 경우 히틀러의 공이 있기는 합니다만 전반적으로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전략적 식견으로 계획을 수립햇죠.
  • 궁굼이 2016/05/28 15:40 # 답글

    전투는 이겼지만 전쟁은 진다...
    손자병법에도 비슷한거 써있을거 같은데 말이죠[...]
  • 무지개빛 미카 2016/05/28 15:57 # 답글

    그 최종결정권자가 히틀러였으니.... 히틀러 머리속의 큰 그림을 대체 누가 이해한답니까? 그 정신나간 초현실주의를 아득히 넘은 '내가 왜 이런 걸 보고 사냐'급의 개념을 말이죠.

    왜 히틀러는 "소련을 공격한다"를 선택했죠? 왜 히틀러를 뜯어말릴 사람이 아무도 없었죠? 간단해요. 나치독일, 제 3제국이 망한건 딱 하나 입니다. 그런 재대로 된 개념을 가진 사람을 중히 여기고 큰 자리에 기용해야 하는데 최고 통치자가 그런거 싫어했거든요.

    전경련에 회원으로 있는 모 기업 회장이 이런 말을 했죠.

    "사업이 망하는 건 왜 그런 줄 아나? 간단해.

    사업을 하는데 있어 100% 자기가 아는 분야라면 자기 스스로 해. 100% 모르는 분야면 전문가 고용하고 연봉 줘,

    사업이 망하는 것은 100% 아는 분야도 아니면서 이거저거 다 건드리다 망하는거야."

    나치독일이 왜 전투는 이겨도 전쟁은 패하는가에 대한 답이 나옵니다.
  • 파리13구 2016/05/28 16:19 #

    네, 히틀러가 XX끼 입니다...
  • ssn688 2016/05/28 16:02 # 삭제 답글

    1. 가령 대전략을 잘 짜서 성공한 예를 들어보라면, BC 3세기경 진秦은 외국인 재상 범수를 영입하여 "원교근공" 전략을 수립, 타국(6국)의 연대를 저지하고 인접한 소국부터 각개격파를 개시합니다. 사전에 (거리가 떨어져있는)국력이 센 대국(제, 초)과는 위협과 화친을 병행하면서 자기들과 적극적으로 싸울 의욕을 잃게 만들었죠.
    그런데 1차나 2차나 독일은 양면으로 전선을 형성했으니... 이 상황에서 머리를 더 써본들 뭐가 나아지려나 싶습니다. 하긴 대전략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했다면 전쟁을 포기하는 쪽으로 갔을지도... -ㅁ- 비스마르크가 영국과 화친하고 프랑스를 고립시킨다는 전략을 구사했을 때까지가 독일의 정도였던 겁니다.

    2. 그러니 대전략에 관해선 일단 국가의 최고지도자(빌헬름2세, 힛 총통)의 책임이 가장 크고, 하긴 당시 군부의 수뇌부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진 않았다는 점에 나름의 책임은 있겠다 하겠습니다. 군인도 최고위층쯤 되면 군사뿐만 아니라 외교까지 포괄한 대전략에 대한 고민은 있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안보"란 건 국방뿐만 아니라 외교까지 포괄해야 하지만, 1차 대전 준비한 독일군부의 마인드가 전쟁은 우리(+군통수권자인 황제)들의 문제, 외교부따윈...이란 수준이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막판에 외교적 타협의 가능성을 보고서 황제가 망설일 때도 군부가 돌이킬 수 없다고 압박을 했죠.
    2차의 경우는, 일 크게 벌이는 게 좀 걱정되긴 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수준이었고요. (그런데 딴 생각을 한들 절대권력의 힛 총통 앞에서 뭘...)

    3. 4발 중폭격기 문제는 대전략 하위의 군사전략과 관계가 있을 터인데, 독일이 전선의 전투력을 넘어선 적의 전쟁수행능력을 파괴하는 전략적 마인드가 부족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해상전에선 통상파괴에 열심이었죠. (그런 것을 보면 방대한 석유비축기지나 수송선단에는 관심 없는 일본이 정말 전략에 무개념이었습니다)
    4발 중폭격기의 문제는 당시 독일 항공산업 역량과 관련을 지어 봐야하지 않을까 싶네요. 당시의 폭격이란 건 정말 물량빨인데, 2발 폭격기로도 영국에 대한 숫적인 압도를 달성치 못한 독일이 4발 중폭격기는...

    4. 작전 측면에서도 독일이 병참문제에 소홀한 결점이 있었지요. 역설적으로 기계화율이 높은 현대의 군대일수록 병참소요가 크고, 이게 꼬일 때의 피해는 고대나 중세때보다 큽니다. 옛날에는 병참소요의 대부분이 식량과 피복(안되면 약탈?!?!!)이었지만, 탄약이나 부품은 정말 답이 없죠. 연료는 밭에서 걷어올 수도 없고요.
    작전계획 수립에서도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았고, 야전부대보다 상위의 병참관련 행정부서에서도, 분리된 철도 부문과 도로(자동차수송) 부문의 비협조라는 관료적 폐해가 컸습니다. 어차피 북아프리카든 러시아든 애초에 일 벌린 게 막장인 악조건이긴 했지만, 당시 최선을 다했다고 보기에는 미흡했죠.
  • 파리13구 2016/05/28 16:18 #

    오.. 감사합니다. ^^
  • 파파라치 2016/05/28 16:51 # 답글

    양차대전 자체가 독일 지도자들의 비현실적인 대전략(Weltpolitik 이라든가 Lebensraum이라든가...)의 결과였으니 패배가 불가피했다쳐도, 연합국의 승리가 대전략을 잘 수립한 때문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저 압도적인 물량의 우위때문이었죠.
  • 파리13구 2016/05/28 17:01 #

    연합국의 승리가 대전략을 잘 수립한 때문이라고 보기도 어렵다는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연합국의 대전략은 무엇이었는지요?
  • 파파라치 2016/05/28 17:32 #

    연합군의 대전략은 가차없는 물량전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을 듯합니다.

    압도적인 생산력과 병력(특히 공군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독일군과 독일 산업력의 끊임없는 출혈을 강요하면서 독일을 양면에서 압박, 궁극적인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었겠지요.

    그런데 이런 전략은 연합국의 지리적 위치와 물량적 우위를 자연스럽게 활용하는 것에 불과하고, 그 우위는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설계한 것이 아니라 독일(그리고 추축국)의 광역도발의 결과일 뿐이라는 점에서 딱히 평가할 만한게 아니죠. 물론 2차대전 당시 연합국 지도자들(스탈린 포함)의 개인적인 역량과 리더십을 평가절하하는 건 아니지만.
  • 파리13구 2016/05/28 17:33 #

    연합군의 대전략은 가차없는 물량전이다는

    파파라치 님의 주장입니까?
  • 파파라치 2016/05/28 17:44 #

    연합군이 의도적으로 물량전을 수행한 사실 자체는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인 만큼 딱히 제 주장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제 주장은 굳이 말하자면 "당시 연합국에 대전략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물량전의 수행이었을 것이다" 라고 할 수 있겠네요.
  • 파리13구 2016/05/28 17:48 #

    감사합니다.
  • 소울오브로드 2016/05/28 21:18 # 답글

    전장에서 100번을 이겨봐야 그 승리를 의미있는 전략으로 이용못하는 트롤링하는 대가리(히틀러) 때문에 무-리.

    손자병법에서 하지 말라는거 절반 이상은 한게 히틀러라(담배) 안지면 이상한거죠.

    그러고보니 그당시 추축국 3국 모두 병사나 일선 지휘관들은 용감하고 유능한 편이었습니다.

    ..........대가리들이 노답 트롤러들 추축국들 장교 심정은 롤에서 트롤데리고 이겨보려 하는데 트롤이 말 안듣고 이상한 짓만 하는걸 보는 느낌보다 더 심했을겁니다.
  • Mavs 2016/05/28 21:49 # 삭제 답글

    기라성같은 천재들이 정신병자 밑에서 일한게 비극이죠.
  • 행인1 2016/05/28 23:26 # 답글

    최근의 군사사 연구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오고 있죠. 전략적인 열세를 전술이나 작전술의 승리로 어찌 해보려 했다고...(프랑스까진 어찌 되는데 소련이나 미국 상대로는 그야말로 당랑거철)
  • 무지개빛 미카 2016/05/29 09:51 #

    가장 좋은 사례가 바로 방어전의 사자, 기적을 만드는 자, 전선에서 예비부대를 만드는 사람, 전선을 리모델링하는 사람이라 불리었던 발터 모델 야전원수였죠.

    발터 모델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히틀러가 자꾸 과대망상적인 목표를 설정했으니, 100번 1000번 기적을 만든들 뭐 하겠습니까?
  • wolf 2016/05/29 21:56 # 삭제 답글

    히틀러의 전략적 식견부족이라고 하기는 좀 그런거 같습니다.
    히틀러는 독일군이 약체일 시기부터 이탈리아를 동맹으로 끌어들이고, 영국, 프랑스, 소련 및 그외의 국가들의 균열, 정치상황등을 이용해서 직접 충돌은 피하면서 오스트리아, 체코 합병 그리고 재군비를 성공시켰습니다.
    그리고, 양면전선을 피하기 위해 독소불가침 조약을 체결하고, 폴란드, 프랑스등을 패배시키고, 서부유럽을 사실상 장악하고, 독소전을 개시하게 되면서 몰락하죠
    군사외에 외교, 정치등의 요소를 골고루 활용해서 1차 대전당시의 독일보다 불리한
    입장인데도 횔씬 성공을 거두죠
    히틀러의 전략이 소련의 괴물같은 잠재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것만 뺴면 아주 잘 맞아들어갔죠
    그런데 스탈린이나 영미수뇌부도 독소전초기에는 소련의 패배를 예상했으니, 딱히 히틀러의 무능이라고 하기는 어렵죠
    물론 1942년부터 히틀러가 트롤러 짓을 하기시작하지만, 적어도 1941년까지는 놀라운 성과를 올렸습니다.
  • 홍차도둑 2016/05/31 21:16 # 답글

    전쟁 이후 살아남은 장군들이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식으로 히틀러에게 덮어씌워버린 것도 큰데다가 WW1 이후 군부 분열등을 나름 봉합하고 한게 히틀러입니다.

    특히 '히틀러에게 덮어씌우기'로 인해 이후 '나치에 얼마나 적극적이었는가?'라는 논쟁에 빠져들게 되는 '명장' '천재'들이 하나둘이 아닌게 WW2의 독일 군부라는 점도 절대 잊으면 안되죠. 이 부분은 당대에는 일단 죽은 놈에게 '거대악당'이라는 틀을 씌워두고 나머지를 봉합하려는 연합군의 그런 의도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 2016/06/01 13:1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6/01 14:0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