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병합] 무엇이 일본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나? Le monde

1882년의 조미수호통상조약의 문제...

한양대 최정수 선생의 연구에 따르면, 1905년 을사늑약 이후 한국의 보호국화에 성공한 일본에게 공포를 준 것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헤이그 체제로 대표되는 국제법이었다.

왜 한일병합은 일본 제국에게 국제법적 재앙이 되었을까? ㅠㅠ


일본은 한국문제가 헤이그 중재재판으로 가는 길을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었다. 이는 보호국제도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1) 보호국제도는 중재재판을 완전히 봉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보호국제도는 두 가지, 즉 통상조약과 헤이그협약45)을 법적 근
거로 하여 성립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교권을 제외한 나머지 권리는
보장해 주어야 했으며, 이를 어기면 중재재판을 각오해야 했다.46) (2)
을사협약이 한국의 보호기간을 ‘한국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충분히
해결할 만큼 강력해졌다고 인정할 수 있는 시점’까지로 규정하고 있다
는 점도 문제였다. 이 조항 때문에 일본은 조만간 병합할 것인가. 아니
면 독립시킬 것인가를 결정해야만 했다.47) 제3차 헤이그평화회의가 열
리면 한국의 보호기간이 의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태였다. 연구자는 이를 ‘헤이그포비
아’로 부르기로 했다. 고무라는 ‘만약 그 사건이 중재재판소에 회부될
경우 패소한다. 그 경우 일본은 중재재판소의 결정을 무시하고 전쟁으
로 갔을 것이다’고 생각했다. 


출처-
최정수,"한일병합조약의 국제법적 기원과 국제적 승인문제", 한일관계사연구/51(-), 2015., p.418.



국제법의 시각에서 보면,

1910년의 한일병합조약은 일본의 한국강점 문제의 종결이라기 보다는 시작이다.

왜 일본은 한국의 보호국화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병합을 결정했는가?

이 결정과정에서 국제법,헤이그,중재재판은 어떤 영향을 준 것인가?

일본패망의 국제법적 기원,씨앗이 된 것이 1910년의 한일병합조약이 아닐까?

메이지유신 이후 국제법과 일본의 관계의 역사를 보면,

1910년이 분기점이 된다. 그 이후 일본은 국제법과 멀어져갔다.

국제법과 멀어진 일본은 미국과도 점점 멀어져갔고,

이것이 태평양전쟁의 분위기를 조성해 나갔다.

1945년 일본 패망과 국제법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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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Megane 2016/04/20 21:02 # 답글

    어차피 처음부터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사상적 토대가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거겠죠.
    애초에 국제법따위 지킬 생각 없었던거라고 밖엔...
  • ㅎㅎ 2016/04/20 21:14 # 삭제

    대동아공영권이나 중일전쟁 개전, 태평양 전쟁 개전이, 일본의 명확한 대전략이나 국가정책으로서의 방향성을 가졌는지부터가 좀 의문 아닐까요. 중일전쟁 개전이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가장 큰 요인인데, 중일전쟁 개전에 있어서 일선 군인들의 폭주 외에, 뭔가 명확한 목표나, 전략이 일본 수뇌부나 군 상층부에 명확히 있었던 흔적을 찾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 Megane 2016/04/20 23:54 #

    방향성이라기보다는 그냥 국제질서에 따르기가 못마땅한 게 아니었을까 해서 적어봤습니다. 목표나 전략이라기보다는 그냥 감정적인 선동일 겁니다. 그리고 그 감정적 폭동, 선동 등등이 길게 이어지다보니 핵을 맞을 때까지 그냥 마구 전진했겠지요.
    게다가 국뽕을 맞은 뒤라서 돌아갈 생각도 못했을 거 같습니다.
    물론 비판적인 시각도 있었겠지만 말이죠.
  • RuBisCO 2016/04/21 05:27 #

    정확히는 일본 민중의 의사에 휘둘릴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민중이 폭주하기 시작하면서 걷잡을 수 없게 된 거죠.
  • RuBisCO 2016/04/21 06:12 # 답글

    생각해보면 아주 당연한 일인데 일본 민주정의 시작이란건 일본의 열강으로의 이행을 위한 재원을 확보하는 세금을 정당화하는 명분이기도 했기에 마치 주식 같은 성격도 띠고 있었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조선을 집어먹는데 실패하게 되면 주주들 앞에서 하려던 사업이 불법이라 정리해야되서 그동안 부으신 돈 다 손실되었습니다! 라고 선언하는것과 다름없는 꼴이 되죠.
  • 파리13구 2016/04/21 10:49 #

    한국을 영구히 먹으려다 미국과 전쟁하게 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 RuBisCO 2016/04/21 11:07 #

    사실 운이 좀 따라주던 상황이라 욕심을 적당히 차렸으면 한반도까지는 문제가 없었을겁니다. 영국의 후원이 있었으니까요. 주변 상황이 정신 없는 틈을 타서 운좋게 만주까지도 어영부영 집어삼킬 수 있기도 했고. 하지만 이미 폭주를 시작한 일본 민중과 그 기세를 탄 군부가 거기서 만족하지 못한게 문제죠.
  • deokbusin 2016/04/22 15:50 # 답글

    1. 1920년대까지 일본은 만주에 대한 일본의 특수 권익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고 믿고 있었지만, 그 이후 국제 사회가 일본의 주장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상당한 불안감을 일으킵니다. 그 여파가 바로 만주 사변이었지요.

    2. 이미 망해버린 조선-대한제국과 맺은 조미수호통상조약에 대한 미국 상원의 움직임은 1차대전 동안 중국에서 일본의 세력이 급신장하면서 미국의 중국내 이익이 흔들리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겁니다. 즉, 미국은 일본의 한국병합을 법제적으로 승인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일본을 압박함으로써 중국에 대한 일본의 세력 확장을 제어하려던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 파리13구 2016/04/22 17:11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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