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와 마키아벨리 그리고 스피노자” Le monde

"윤리가 도덕과 충돌할때..."

스피노자에 대한 E.H. 카의 이해

20년의 위기에서 카는 스피노자를 장 보댕과 홉스와 더불어 마키아벨리의 지적 전통에 속하는 현실주의자로 규정했다. 스피노자가 현실주의자인 것은 다음 세 가지 주장을 통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 첫째, 역사는 인과론 분석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둘째, 이론은 현실로부터 도출되는 것이지, 이론으로부터 현실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셋째, 정치는 윤리의 기능이 아니다. 오히려 윤리가 정치의 기능이다. politics is not a function of ethics, but rather that ethics is a function of politics.

카에 따르면 현실주의에 대한 스피노자의 공헌은 4가지이다. 첫째,현실 정치인이 이론가 보다 정치의 이해에 더 많이 공헌한다는 것이다. 정치가의 영감은 경험을 통해 축적되는 것으로, 이것이 실제로 유용하다는 것이다. 둘째, 스피노자가 자연법 the laws of nature 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법을 따른다는 것이다. 이것이 결정론으로 연결된다는 것이 카의 해석이다. 인간 행동이 법칙에 따르는 이상, 이를 예측가능하다는 것이다. 카에 따르면, 스피노자가 윤리는 현실 연구의 최종적 분석이 된다는 이론을 확립했다. 
셋째, 카에 따르면, 마키아벨리,홉스,헤겔과 함께, 스피노자는 국가간 관계에 어떠한 윤리적 기준도 적용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현실주의자이다. 스피노자는 "국가는 신뢰를 깼다는 이유로 비난받을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은 다른 국가들도 그것이 자신의 이해에 부합된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스피노자에 대한 카의 마지막 해석은 국제관계에서의 법률문제와 관련 있다. 스피노자는 자연법을 수용했다고 알려졌지만, 국제법을 사실상의 강자의 권리와 동일시했다는 것이다. 

“키신저와 마키아벨리 그리고 스피노자”

그렇다면 키신저는 스피노자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키신저는 스피노자를 마키아벨리와 대립되는 사상가로 이해했다. 

1972년 올리아나 팔라치와의 대담에서 키신저는 자신의 사상에 마키아벨리의 사상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키신저는 피렌체 군주의 조언자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거나 활용할 수 있는 마키아벨리의 사상이란 실제로 매우 드물다... 만약 당신이 그렇다면 누가 내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는지를 알기 원한다면, 나는 두 명의 철학자의 이름을 댈 수 있다 : 스피노자와 칸트다. 당신이 나를 마키아벨리와 관련지은 것은 매우 특이한 일이다." 

`Kissinger: an Interview with Oriana Fallaci', in New Republic, no. 167 (16 Dec.1972), p.21
 

하지만 카는 스피노자가 마키아벨리를 존경했다고 보았다. 에드원 컬리에 따르면, 스피노자는 마키아벨리를 그의 <<정치론>>에서 공격한 철학자들에 속하지 않는다고 분류했다고 한다. 스피노자는 마키아벨리를 <<정치론>>에서 찬양한 정치가들에 속한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그 정치가란 경험을 통해서 인간의 사악한 행동을 예측하는 법을 배운 존재이다. 그 결과로, 인간사를 훌륭하게 해석했다는 것이다. 

Edwin Curley,‘Kissinger, Spinoza and Genghis Khan’, Cambridge Companion to Spinoza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6), p. 329.

스피노자는 이론가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스피노자는 이론가들이 인간본성에 대해 비탄이나 표명할 뿐이며, 실제적인 문제에 대해 어떤 유용한 것도 제공할 능력이 없다고 비난했다. 스피노자는 다음을 주장했다 :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저술하는 것은 윤리가 아니라 풍자문학  satire 이다. 그들은 현실에 적용될 수 있는 정치이론을 결코 만들지 못했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란 환상에 근거하고 있거나, 유토피아에서나 실현가능한 것이다." 

Spinoza, Political Treatise, p. 680.
 

스피노자에 따르면, 자연법은 가혹하다. "이로써, 인간은 자연권에 따르게 되고, 자연에 의해 확립된 질서에 따르게 된다. 자연의 지배 하에서 모든 인간은 태어나고, 대부분의 삶을 살아간다. 자연은 아무도 원하지 않고, 아무도 할 수 없는 것들만을 금지할 뿐이다. 자연은 투쟁 혹은 혐오 혹은 분노 혹은 사기에 눈살을 찌푸리지 않으며, 욕망에 의해 강제되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다. 이것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연에 대한 속박은 인간의 이성의 법칙에 의해서 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성의 법칙은 인간의 진정한 이익과 자신의 보존만을 목적으로 한다. 반면에 무한한 다른 법칙은 자연 전체의 영원한 질서를 목적으로 하고, 이 질서에서 인간은 작은 입자에 불과하다." 

Spinoza, ‘Theological-Political Treatise’, in Complete Works, ed. Michael L. Morgan, trans. Samuel
Shirley (Indianapolis: Hackett, 2002), p. 528.
 

자연법 때문에, 주권 권력은 어떤 법에도 속박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스피노자의 주장이다. 국가의 권리는 법률적 혹은 도덕적 이성과 유사한 것이 아니라 힘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법에 대한 힘의 우위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스피노자가 동맹국의 신뢰를 깨는 것도 문제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것은 국가간 조약의 기원이 되는 힘과 이익을 고려한 것이며, 조약은 '상실에 대한 공포 혹은 획득의 희망'에 따른 것인데, 조약의 유효함은 조약 당사국들의 동기가 지속되는 동안에만 지속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익이 부재한 상황에서, 두개의 국가를 묶어주었던 결속은 자동적으로 붕괴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Spinoza, Political Treatise, p. 694.

 
그렇다면, 스피노자는 국제법은 강대국의 이익을 정의로 포장한 것에 불과한 것이라 해석한 것인가? 이는 <<국가>>에서 소크라테스가 비판한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을 반복한 것인가? "강자의 이익이 정의"라는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에 대해서, 소크라테스는 정의는 강자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정의란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의 의견이 모아져야 한다.이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그 법은 지속될 수 없는 법이다. 소크라테스가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소크라테스- 트라시마코스 선생, 당신은 정의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트라시마코스- 강자의 이익이 정의입니다. [참고 :트라시마코스 기원전 459-기원전 400 그리스 철학자] 지배계급은 그들의 이익이 되도록 법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법이 옳은 것이고 정의라고 말합니다.법을 어긴 자들은 위법자,부정한 범죄자로 처벌하죠. 이제 아시겠습니까? 법과 정의는 강한 자의 편이란 걸요.
소크라테스- 꼭 그렇지 않습니다.의사는 환자의 병을 치료하고, 선장은 승객의 안전을 돌봅니다. 마찬가지로 통치자는 통치 받는 시민들을 이롭게 하는 사람 아닙니까?
트라시마코스- 소크라테스 선생님, 그렇다면 목동들은 양을 위해서 양을 모는 것입니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소크라테스- 나는 정의가 무엇인지 법이 누구 편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지배자들이 피지배자의 이익을 위해 통치하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조약 파기의 문제에 대한 스피노자의 해석에 대해서, 에티엔 발리바르는 스피노자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 단지 강대국만이 조약이 깨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뿐이다. 조약이 체결될 당시에 존재하던 당사국들의 이해가 사라진 상황에서 조약이 깨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강대국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 강대국이 동시다발적 상황에서 많은 경우에 이 법칙을 적용하려고 한다면, 그 국가는 자신의 힘을 위협에 빠지게 만든다. 이는 국가간 관계에 마찬가지다. 국제관계에서 국가 위에 어떤 상위 권력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따라서 결정적인 요인은 관련 당사국들의 이익에 달려있다. 

Etienne Balibar, Spinoza and Politics (London: Verso, 2008), p. 62.

스피노자에 따르면, 국제관계는 자기이익의 보존이라는 근본적인 현실이 강조되는 세계이다. 조약은 체결되고, 실천되고, 결국 시행되며, 국가는 자신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조약을 깰 완전한 권리를 가지며, 조약 체결시의 공포 혹은 희망의 이유가 제거된 상황에서 당사국이 신뢰를 파괴했다는 이유로 배신 혹은 불성실하다고 비난할 수 없다. 

Spinoza, Political Treatise, p. 694.
 

주권 권력은 힘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어떤 정치가도 다른 국가와의 신뢰를 깨면서 자신의 국가를 위태롭게 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정치가는 자국의 안보를 조약 상대국의 신뢰에 의존하게 만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카에 따르면, 스피노자는 힘과 권리  power and right 을 동일시했다는 것이다.


참고-

SEÁN MOLLOY (2013). Spinoza, Carr, and the ethics of The Twenty Years' Crisis. Review of International Studies,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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