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키신저와 로널드 레이건" Le monde

제국의 몰락...


키신저의 외교정책에 대한 로널드 레이건의 비판의 핵심은 데탕트에 대한 공격이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데탕트를 일방통행이라 비난했다. 그는 해외에서의 실패 사례를 들었다.- 베트남,앙골라,포르투갈. 데탕트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데탕트에 대한 우파 내부의 비판에 직면해서, 키신저는 데탕트의 정의의 미묘한 수정을 시도했다. 1974년 9월, 키신저는 '데탕트가 소련과의 더 생산적인 관계를 위한 모색'이라 정의했다. 베트남 함락 이후인 1975년 7월, 키신저는 "경쟁적인 관계를 조절하기 위한 수단"이라 불렀다. 1976년 2월, 그는 데탕트를 "소련의 팽창을 막기위한 것"으로 정의했다. 

키신저의 염세주의 세계관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다. 전직 해군 작전국장 엘모 줌월트 Elmo zumwalt는 그의 회고록에서 키신저는 염세주의 때문에 소련과 타협하는데 안달이 났다는 것이었다. 회고록에서 그는 키신저와의 대화를 인용했다. 키신저는 미국이 다른 모든 문명들이 그랬던 것처럼 전성기가 지났다고 믿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련이 스파르타라면 미국은 아테네라는 것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키신저는 자신의 사명이 쇠락하는 하는 강대국을 위한 가능한 최선의 거래를 하는 것이라 했다. 즉 미국 문명이 전성기를 지났기 때문에, 다른 문명이 그랬던 것처럼 소련과 같은 부상하는 세력과 타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련이 스파르타라면, 미국은 아테네냐는 것이다.   

물론, 키신저는 줌월트의 주장을 허구라고 부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신저의 염세주의는 확인가능하다. 키신저는 미국이 제3세계에서의 소련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개입하는 것, 특히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결론내렸다. 키신저는 음울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슈펭글러 처럼, 키신저의 역사의 방향에 대해 염세적이었다. 

이러한 염세주의는 키신저가 하버드 대학 학부 졸업논문으로 작성한 1950년의 <<역사의 의미>>에서도 확인된다 : "인생은 고통이다. 탄생은 죽음을 내포한다. 덧없음은 존재의 운명이다. 어떤 문명도 결코 영원하지 않았다... 부헨발트의 나치 수용소와 시베리아의 강제수용소의 세대는 과거와 같은 낙관주의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 없다."고 적었다.

하지만 이 논문의 말미에서, 키신저는 슈펭글러의 염세주의를 비판적으로 수용했고, 칸트를 인용하면서 다음을 주장했다 : "인간이란 존재는 역사의 폭력이란 현실에 대해 초월적이다. 인간의 행동은 영혼의 태도에서 기인하는 열망을 입증하며, 조건에 대한 평가를 입증하지 않는다. 물론, 지친 시대임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대가로 죽음을 필요로하지 않는다. 자유의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과거의 고통과 역사에 대한 환명을 초월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정신 속에 인간성의 본질이 있다. 각각의 인간은 삶의 필연성에 대응한다는 점에서 독특하고, 이러한 초월이 평화를 낳는다." 

말하자면, 인간, 특히 위대한 정치가는 사건을 이끌수 있고, 비극을 막을 수 있는 자유를 가진다는 것이 키신저 논문의 결론이었다.

그로부터 25년 후, 키신저는 제임스 레스턴과의 인터뷰에서 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역사가로서 당신은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문명이 결국 붕괴했음을 알아야 한다. 역사는 실패한 노력들의, 실현되지 못한 꿈의, 채워지지 못한 소망의, 그리고 기대했던 것과는 반대의 것으로 판명된 이야기이다." 하지만, 키신저는 "정치가의 사명이 이런 쇠퇴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리고는 "나는 스스로 정치가라기 보다는 역사가라고 생각한다."고 밝히면서 염세주의에 대한 그의 입장을 공개했다.

줌월트의 주장이 현실인지 아닌지 여부를 떠나, 키신저의 염세주의는 정치적 문제가 되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사설을 통해서 다음을 지적했다 : " 키신저 국무장관의 음울한 개인적 사색에 대한 소문이 무성하다. 동서간의 대결이 자유세력인 아테네(미국)와 나폭하고 규율있는 스파르타(소련)의 재대결이며, 비틀거리는 아테네가 새로운 스파르타에게 최대의 양보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조지 윌도 "키신저는 전략적으로 시간이 서양의 부르주아 사회의 편이 아니다."고 주장했다고 키신저를 비난했다.

로널드 레이건은 한 연설에서 키신저를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키신저 박사는 미국을 아테네로, 소련을 스파르타로 생각했다고 했고, 미국의 시대는 이미 과거라고 주장했다."고 레이건이 선언했다. 레이건은 키신저가 소련에 양보하기 위해서 안달이 나있다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테네를 인용한 키신저를 두둔하자면, 펠레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스파르타에게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승리한 도시국가는 아테네였고, 아테네가 스파르타 보다 수세기를 더 오래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역사관에 대한 줍월트와 로널드 레이건의 비난에 대해서, 키신저는 한 기자회견에서, "줌월트에게 퓰리처 픽션상 후보에 올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미국이 패할 것이라 믿지 않는다. 나는 미국이 쇠락하고 있다고 믿지않는다."고 자신에 대한 비난을 부정했다.


출처-

Isaacson, Kissinger: A Biography, Simon & Schuster,1992,pp.695-698


지난 2007년의 마더 존스 보도에 따르면, 닉슨과 키신저의 레이건에 대한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미국- 마더 존스 보도
2007년 11월 15일

리처드 닉슨은 정치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가였다. 그는 같은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을 과소평가한 것처럼 보인다. 

1971년 11월 17일, 닉슨은 집무실에서 국가안보보좌관 헨리 키신저와 당시 켈리포니아 주지사였던 로널드 레이건에 대한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었다. 

얼마전에 키신저가 레이건과 대화를 나누었고, 레이건은 닉슨이 보수주의자들과 문제가 있다고 했고, 닉슨은 대외정책에서 충분히 매파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다음은 11월 17일의 닉슨과 키신저의 대화다.

닉슨- 레이건을 몇번 만나보니, 그에 대한 소감이 어떻습니까?

키신저- 글쎄요, 나는 그가 매우 매력적인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닉슨- 오, 매력적인 것 말고, 그의 두뇌요.

키신저- 그는 어리석은 악당입니다. 그는 자질이 부족합니다. 그는 배우입니다. 그가 전화통화를 할때 그는 매우 잘 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 오, 사람은 그가 한 것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말한 것으로 기억된다. 이것보다 더 멋진 대사가 있습니까? (일동 웃음) 

이는 대외정책에 대한 배우적 접근입니다. 배우적 자질에 불과합니다.

닉슨- 당신도 잘 알겠지만, 나도 좋은 말은 많이했소,

키신저- 물론입니다.


(이후 24분간 대화를 더 나눈 뒤, 두 사람은 레이건의 대통령 출마 가능성에 대해 논의한다)

닉슨- 헨리, 당신은 레이건이 백악관의 이 자리에 앉을 능력이 있다고 봅니까?

키신저- 상상조차 할수 없습니다.

닉슨- 이 레이건이라는 지적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은 예수라면 외교에서 했을 것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어요. 그가 국방에 대해서 알아가겠지요, 하지만 그가 우리가 싸우는 전투에 대해서 알지 못해요. 젠장! 헨리, 우리는 말이죠...    



덧글

  • 레이오트 2016/04/03 16:33 # 답글

    무신론자면서 메시아를 원했다라, 뭔가 이율배반적이네요.
  • 파리13구 2016/04/03 16:35 #

    키신저를 이율배반이 아닌 관점에서 해석하는 모든 글은

    오류라는 것이 저의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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