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학]현실주의-이상주의 논쟁의 기원? 유럽외교사

"E.H. 카는 대독 유화론자 였다!"

[국제정치학]
[20년의위기]
[현실주의][이상주의]



이언 홀에 따르면, 1930년대 중반 이전까지 영국에서 현실주의라는 단어 자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현실주의가 뜨거운 논쟁의 중심이 된 것은 국제연맹의 효율성과 1935-1936년의 아비시니아 위기 the Abyssinian crisis of 1935 – 36 에서의 영국 외교정책의 지혜에 관련된 격렬한 논쟁을 통해서 였다.

이 논쟁에서, 현실주의자와 이상주의자라는 용어는 국제관계의 특정 이론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대신에, 현실주의자는 국제연맹에 비판적인 사람을, 이상주의자는 국제연맹이 계속해서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이전에 비밀이었던, 호어-라발 협정 Hoare-Laval Pact 이 공개되면서, 영국 정치계의 새로운 분열이 확인되었다. 호어-라발 협정은 국제연맹을 따돌리고, 영국과 프랑스가 무솔리니의 아비시니아 점령을 승인한 것이었다. 

협정의 지지자들은 국제연맹이 이제 끝장난 것으로 간주했고, 스스로를 현실주의자라 불렀고, 협정의 비판자들은 국제연맹이 여전히 담당할 역할이 있고, 현실주의자들에게 이상주의자가 되라고 훈계했다. 

Ian Hall,Dilemmas of Decline British Intellectuals and World Politics,1945 – 1975,pp.31-32.


무솔리니 왈, "국제연맹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호어-라발 협정 1935년>
Hoare–Laval Pact

호어-라발 협정은 1935년 12월에 영국 외무장관 사무엘 호어 Samuel Hoare 와 프랑스 외무장관 피에르 라발 Pierre Laval이 제2차 아비시니아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제안한 것이었다. 이탈리아는 아비시니아를 제국의 일부로 만들기를 원했고, 이 지역에서의 과거의 패배에 대한 복수를 도모했다. 협정은 오늘날의 에티오피아인 아비시니아의 분할을 제안했고, 독립국 아비시니아를 이탈리아 식민지로 만들고자 했던, 이탈리아 독재자 무솔리니의 목표를 실현시키는 것이었다.

라발이 작성했고, 호어가 동의한 이 협정은 1935년 12월 7일에 무솔리니에게 제안되었다. 이 계획의 골자는 이탈리아는 아비시니아의 2/3를 보유하고, 아비시니아는 나머지 영토를 보유하는 국가로 존속한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아비시니아의 바다를 향한 출구인 아삽 Assab 항을 보장한다는 것이었는데, 당시 언론은 이를 "낙타를 위한 회랑" corridor for camels이라 불렀다.

무솔리니는 이 제안에 동의할 준비가 되었고, 이를 통해 전쟁으로 점령한 지역보다 더 넓은 영토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계획이 1935년 12월 13일에 프랑스 신문에 누설되었고, 아비시니아를 팔아넘겼다는 비난을 받았다. 영국 정부는 자신이 협정과 무관하다고 주장했고, 호어와 라발은 사임할 수 밖에 없었다. 영국에서 호어의 후임은 앤서니 이든이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이탈리아가 아돌프 히틀러의 야망을 견제하기 위한 스트레자 전선 the Stresa Front 에 남도록 하기위해서 노력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아비시니아에서의 이탈리아의 제국주의적 야심을 지원하는 대신, 이탈리아는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을 저지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거래였던 것이다. 더욱이, 무솔리니는 아비시니아 전쟁을 끝내기를 원했고, 이는 에밀리오 데 보노 Emilio De Bono 원수의 비참한 전쟁성과와 예상하지 못한 아비시니아측의 격렬한 저항 때문이었다.

호어-라발 협정이 무산되자, 무솔리니는 프랑스와 체결한 1935년 1월 7일의 로마합의와 스트레자 전선의 파기를 선언했다.

이를 통해 히틀러는 최대의 반사이익을 얻게 되었다. 무솔리니의 아비시니아 침공으로 인해서, 이탈리아와 영불간의 스트레자 전선이 붕괴되었기 때문이었다. 독일의 오스트리아 진출이 용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솔리니가 스트레자 전선으로부터의 이탈을 선언하자, 히틀러는 베르사유 조약의 수정을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히틀러가 1936년 3월 독일의 라일란트 재무장을 도발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역사가들은 호어-라발 협정의 중요성에 대한 입장을 달리하고 있다. 역사가 테일러 A. J. P. Taylor 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국제연맹이 끝장난 것은 1939년이나 1945년이 아닌, 1935년 12월이었다. 이전까지 국제연맹은 강력한 실체였지만, 이제 국제연맹은 내용없는 속임수가 되었고, 모든 사람들이 국제연맹으로부터 가능한 한 빨리 달아났다. 이렇게 국제연맹을 끝장낸 것은 바로 호어-라발 협정의 공개였다. 하지만 이것은 국제연맹이 코르푸에서 만주에 이르기까지의 기존의 회유적 행동의 연장선상에 있는,완벽하게 분별있는 계획이었다. 아마도 호어-라발 계획은 전쟁을 끝냈을 것이고, 이탈리아를 만족시켰을 것이며, 아비시니아에 더 많은 경작가능한 영토를 남겨주었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이 지닌 상식적인 측면이 당시 상황에서는 결정적인 약점이었다."

한편, 군사 역사가 코렐리 바네트 Correlli Barnett 는 만약 영국이 이탈리아를 소외시켰다면, 이탈리아는 당시 영국본토와 제국의 주요 교류망의 한가운데 자리잡은 잠재적인 적이 될 수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영국은 이미 교류망의 양쪽 끝에 이미 독일과 일본이라는 두개의 기존의 잠재적인 적국으로부터 위협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이탈리아가 장래의 전쟁에서 독일 혹은 일본 아니면 두나라 모두의 동맹국으로 싸우게 된다면, 영국은 1789년 이후 처음으로 지중해를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에 몰릴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네트에 따르면, 영국의 군사적,해상적 약점 때문에, 이탈리아를 화나게 만드는 것은 매우 위험한 무의미한 행동이 될 것이었고, 따라서 호어-라발 협정은 분별있는 대안이었다는 것이다.







덧글

  • 레이오트 2016/03/30 12:49 # 답글

    국제연맹과 국제연합이 본업인 세계평화에서 무력한 모습을 보이는건 무엇보다 항시 준비된 독립적인 군대가 없기 때문이지요.
  • 파리13구 2016/03/30 12:54 #

    브레즈네프 시절의 바르샤바 조약기구로부터 배울 점이 있습니다. ^^
  • 레이오트 2016/03/30 13:30 #

    그래서 국제연합에서 분쟁지대 평화유지활동에 PMC를 시험적으로 고용해본 결과 꽤 성과가 좋다면서 앞으로의 평화유지활동에 PMC를 더 많이 이용할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 미군철수 핵무장 2016/03/30 13:41 # 답글

    그렇게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아둥바둥 했던 것들이 지금에 와서 보면 별로 남아 있는 게 없네요. 2차대전 이전과 이후는 이렇게 확연히 다른데, 아직도 제국주의 시대의 예를 들어 중국의 위협 운운하며 미군철수를 반대하는 논리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트럼프가 핵무장의 가능성도 열어 놓았기 때문에 이제 중국이 한국에게 함부로 대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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