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스와 영국의 유화정책... Le monde

"E.H. 카는 대독 유화론자 였다!"

[유화정책]
[케인스]

"케인스도 독일에 대한 유화정책을 지지했을까?"



영국의 유화정책 지지자들은 베르사유가 독일을 너무 가혹하게 처벌했기 때문에, 수정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더불어 명백했던 것은 독일이 베르사유 조약의 수정을 원하며, 독일의 불만을 수용하는 것이 정통성있다고 인정되는 이상, 영국 외교정책이 이를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독일의 정당한 불만에 대한 유화정책은 강대국이 외롭고 허약한 나라에 베풀 수 있는 시혜적 조치로 해석 가능했다.이러한 관점은 유화정책을 상대적 힘의 지위의 관점에서 보도록했고, 비겁한,바보같은 어리석인 것으로 보이지 않게 했다. 

로이드 조지 Lloyd George는 유화정책이 프랑스의 독일 혐오에 대한 필요한 교정책이라 보았다. 

그리고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독일에 대한 유화정책이 경제적으로 의미있다고 보았다. 1920년, 케인스는 <평화의 경제적 결과>라는 영향력있는 글을 통해서, 베르사유 조약에서의 보상 조항이 독일에 가한 재정적 요구가 국제무역과 결제 체제에 거대한 해악을 가할 것이고, 독일 경제를 불안하게 만들고, 독일 경제의 붕괴를 이끌 것이라 경고했다. 그리고 이 예언이 실현되자, 베르사유 조약이 독일에게 가한 경제적 고통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는 것이 적어도 논리적인 것이 되었다.


출처-

Frank McDonough, Neville Chamberlain, Appeasement, and the British Road to War,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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